[기자수첩]묻지마 청약, 깜깜이 계약률, 혼돈의 수요자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2023.11.0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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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제일 잘 팔려요?" 구매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흔히 하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판매자는 "요즘은 이게 제일 잘 나가요" 등의 답변을 한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판매자가 있다면 고객은 "장사를 뭐 이딴 식으로 해?"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게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시장이 있다. 바로 아파트 분양시장이다. 어쩌면 전재산일지도 모를, 수억원대의 돈을 한꺼번에 쓰면서도 수요자들은 어떤 아파트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알 수가 없다. 현행법상 민간 아파트 사업장에서는 분양 계약률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전국 대부분이 규제지역에서 벗어나면서 서울의 청약 경쟁률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언뜻 보면 모든 아파트가 다 잘 팔리는 것 같고 지금이라도 얼른 분양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난 8월 분양한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평균 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200여 가구가 안 팔린 채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묻지마 청약을 한 당첨자 대부분이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이런 사례만 봐도 청약률로 계약률을 유추하기는 어렵다. 건설사들은 아파트가 '완판'됐다는 소식은 빠짐없이 알리면서도 어떤 단지가 완판되지 않았는지, 얼마나 안 팔렸는지는 비밀에 부친다. 절반이 미계약이라는 소문이 들리는데 분양대행사 직원들은 "완판이 임박했으니 좋은층을 선점하려면 바로 계약하러 오라"며 재촉한다. 뭐가 진짜인지 확인할 길은 없고 수요자들은 결국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처럼 분양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합리적 판단은 더더욱 어렵다.



주택 매매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기 위해 정부는 계약 한달 내 거래신고를 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고 최근에는 그 거래가 중개거래인지 직거래인지, 중개사무소는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공개하도록 했다. 전월세신고제를 의무화하고 올 연말에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하기로 하는 등 전월세 시장 투명성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하지만 분양시장만큼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원희룡 국토교토부 장관은 올초 간담회에서 깜깜이 계약률 지적에 대해 "실무적인 차원에서 답변이 필요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부가 건설사의 영업비밀을 적극 보장해주는 덕분(?)에 내 집 마련이 평생의 꿈인 수요자들은 떠도는 거짓정보 속에 방치돼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직시할 때다.
[기자수첩]묻지마 청약, 깜깜이 계약률, 혼돈의 수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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