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조차 "기사 보고 알았다"…'흉부외과 그림자' 이제 양지로 나올까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10.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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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정감사]
강기윤 의원, 국감서 본지 24일자 기사 인용
조규홍 장관 "업무 범위, 자격 여부 살펴보겠다"
흉부외과 전문의 "실망스럽지만 존재 알려진 건 다행"

강기윤 의원이 25일 국감에서 전날 머니투데이가 체외순환사 실태에 대해 보도한 기사의 출력물을 들어보이며, 조 장관에게 체외순환사의 존재에 대해 아는지 질의하고 있다.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강기윤 의원이 25일 국감에서 전날 머니투데이가 체외순환사 실태에 대해 보도한 기사의 출력물을 들어보이며, 조 장관에게 체외순환사의 존재에 대해 아는지 질의하고 있다.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흉부외과의 그림자'로 살아오며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체외순환사. 이들의 존재가 국정감사에서 처음 거론됐다.

25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체외순환사에 대해 들어봤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조규홍 장관은 "이번에 질문한다고 (머니투데이 기사를 통해) 접하면서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24일자 머니투데이가 [단독] "없으면 수술 마비"…흉부외과 '불법' 투명인간 국감 첫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의 출력물을 들어 보이며 "이런 기사도 나왔다. 이번 국감을 준비하면서 (체외순환사의 자격을 논하는 게) 늦은 감이 있지만 기사가 났기 때문에 장관께서도 충분히 숙지했을 것으로 본다"며 "흉부외과 수술 때 체외순환사가 그동안 역할을 꾸준히 해왔고,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요원이라는 점을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동의한다"고 조 장관이 답하자 강 의원은 "그럼 체외순환사를 공식 직종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체외순환사 존재의 중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업무 범위 등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것(체외순환사)에 대해 별도의 자격을 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존 면허와의 관계, 현장 의견을 수렴해 검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25일 오후에 재개한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강기윤(사진 왼쪽) 국민의힘 의원이 조규홍(사진 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체외순환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묻고 있다.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25일 오후에 재개한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강기윤(사진 왼쪽) 국민의힘 의원이 조규홍(사진 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체외순환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묻고 있다.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그러자 강 의원은 "(체외순환사를 공식 직종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제출할 테니 반드시 살펴서 이분들이 정상적인 시스템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체외순환사는 흉부외과에서 심장을 수술할 때 수술장에서 환자의 심장을 대신해 피를 전신에 공급하는 기계(에크모)를 돌리는 일, 쉽게 말해 '혈액의 체외 순환'을 주업무로 담당한다. 심장을 수술할 때 심장의 박동을 멈춰 고정된 상태에서 심장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현재 전국에서 심장 수술을 진행하는 병원은 90여 곳으로, 이곳에 모두 체외순환사가 근무하고 있다. 보통은 심장 수술 때 체외순환사 2명(적으면 1명)이 수술실에서 꼬박 서서 일하는데, 흉부외과 집도의의 지시 하에 혈액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고, 약물을 혈액에 넣어 피를 돌리는 등 업무를 맡는다.

현재 국내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체외순환사는 22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정식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해 모두 불법적인 존재다. 그런데도 수술장에서 체외순환사가 없이는 심장 수술을 한 건도 진행할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흉부외과 의사 수 자체도 부족하지만, 흉부외과 의사가 있더라도 체외순환사가 없이는 심장 수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장관조차 "기사 보고 알았다"…'흉부외과 그림자' 이제 양지로 나올까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체외순환사로 근무하는 이들의 80%는 간호사, 20%는 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등 비(非) 간호사 직역 출신이다. 정부가 체외순환사라는 직종을 정식 인정하지 않아 50여년간 불법의 그늘에 방치돼왔다.


이날 국감에서 조 장관이 체외순환사의 존재를 몰랐다고 답한 데 대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임원인 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정부가 여태까지 필수의료를 지원·육성하겠다고 이야기해왔는데, 가장 기본적인 인력 운영 현황조차 몰랐다는 데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그만큼 필수의료 육성 정책이 촘촘하지 않을 것이고, 흉부외과 영역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나마 지금이라도 복지부 장관 입에서 '체외순환사란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국감에서 체외순환사의 존재, 그리고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자격 인정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된 건 사상 처음이다. 이에 대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일본은 인증제도를 국가에서 백업해주고 교육비 일부를 지원해준다는 점을 참고삼아 현재 법적 테두리 밖에 있는 체외순환사에 대해 법적 불이익이 없도록 유예해줄 것, 향후 체외순환사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격 인증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기대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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