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거리 점령 '음란 전단지' 싹 사라졌다…건대 골목 범죄 '뚝'

머니투데이 양윤우 기자, 정진솔 기자 2023.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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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11시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먹자골목 /사진=정진솔 기자 23일 오전 11시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먹자골목 /사진=정진솔 기자


23일 오전 11시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맛의 거리(먹자골목). 서울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이 거리에는 지난 수년 동안 수천장의 불법 전단지가 뿌려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날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길바닥은 전단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바닥이 반질반질 광이 날 정도였다.

이날 먹자골목에서 만난 광진구 소속 환경미화원 A씨는 "여름에는 불법 전단지만 쓸어도 하루가 다 갔다.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며 "100L 쓰레기 봉지 하나를 가득 채워도 치울 게 남아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을에는 낙엽도 쓸어야 해서 걱정했는데 최근 들어 전단지 양이 크게 줄어 다행"이라고 했다.



상인들도 깨끗해진 거리를 반겼다. 카페 사장 양모씨는 "예전에는 불법전단지가 하루에 3~4번씩 뿌려졌다"며 "미관상 안 좋아서 거리에 대한 이미지도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불법 전단지가) 깨끗이 사라져서 좋다"며 "우리 먹자골목이 성수동처럼 핫하진 않아도 하나둘씩 깨끗해지다 보면 손님들도 더 편한 마음으로 오고 상권도 많이 살아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먹자골목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모씨(50대·남)도 "거리에 낯 뜨거운 불법 전단지가 많아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치우곤 했다"며 "그런데 이런 부분이 없어지니까 확실히 거리 미관상 좋아졌다"고 밝혔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맛의 거리(먹자골목)에 불법 전단지가 대량으로 살포된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맛의 거리(먹자골목)에 불법 전단지가 대량으로 살포된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건대 먹자골목이 깨끗이 정비된 데는 서울 광진경찰서의 노력이 있었다. 먹자골목은 광진구에서 범죄, 무질서 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되는 곳이다. 이에 광진경찰서는 지난 3월부터 '건대 유흥거리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에는 △불법·무질서 환경 개선 △업소 내 범죄예방 △교통 개선 등이 포함됐다.

광진경찰서는 불법 전단지 살포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잠복 수사를 통해 지난 6월15일 주범인 양모씨(28·남)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양씨는 지난 수년간 건대 먹자골목 일대에서 성매매를 광고하는 불법 전단지를 하루에 수천장씩 뿌린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그의 주거지에서 불법 전단지 17만6000장을 압수했다. 양씨는 강남의 한 유흥업소 실장으로 일하며 수수료를 받고 손님을 알선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는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도 발각돼 결국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맛의 거리(먹자골목)에 불법 전단지가 대량으로 살포되는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건대 맛의 거리(먹자골목)에 불법 전단지가 대량으로 살포되는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이 밖에도 불법 전단지를 뿌리거나 범행에 일조한 5명이 청소년 보호법 위반 또는 경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거됐다. 검거된 이들 중에는 양씨의 의뢰를 받고 불법 전단지를 제작한 인쇄소 사장도 있었다. 경찰은 인쇄소 사장 서모씨(64·남)도 청소년 보호법(방조)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매일 밤 먹자골목 길바닥에 뿌려지는 수천만장의 불법 전단지를 청소하는 구청의 인력 낭비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이 일대 불법전단지 살포는 거의 없어졌다"며 "일당 검거 후에도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불법전단지를 신고해주고 광진구청에서도 도와준 덕분에 없어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6월17일 서울 광진구 건대 먹자골목의 한 업소에 경찰이 경고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지난 6월17일 서울 광진구 건대 먹자골목의 한 업소에 경찰이 경고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광진경찰서는 업소 내 범죄예방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찰은 지난 6월 먹자골목에서 영업하는 감성주점 등의 업주들로부터 동의받아 업장 내부에 'CCTV(폐쇄회로TV)가 지켜보고 있다' '술 때문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없다' 등의 문구가 담긴 스티커를 붙였다.

일종의 경고 효과를 주는 이 스티커가 범죄 발생 건수 감소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월~7월 2달간 먹자골목의 범죄 신고 건수가 직전 2개월(4월~5월) 대비 26% 줄었다. 특히 폭력 신고는 6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건대 먹자골목의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한 박창지 광진경찰서 서장은 "건대 맛의 거리 프로젝트는 경찰과 지자체와 주민이 치안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큰 의미가 있다"며 "플랫폼 치안의 좋은 표본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서울 광진경찰서 박창지 서장이 '건대 맛의 거리'에서 이옥희 맛의 거리 상가번영회 회장 등과 합동으로 질서유지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지난 19일 서울 광진경찰서 박창지 서장이 '건대 맛의 거리'에서 이옥희 맛의 거리 상가번영회 회장 등과 합동으로 질서유지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제공=서울 광진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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