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쾅, 추락해 죽은 '작은새'…낙엽을 덮어주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3.10.24 08:00
글자크기

'유리창 있는줄 몰라' 새들 부딪혀 한해 800만마리 죽어…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투명 방음벽에 새들 지속적으로 충돌, 주민들 '방지스티커 부착' 건의했으나 안 바뀌어…서울 3개 자치구 외엔 '조류충돌 저감조치' 안 해, 건축법 개정 필요성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단지 내 '투명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던 박새.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걸로 추정되었다./사진=남형도 기자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단지 내 '투명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던 박새.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걸로 추정되었다./사진=남형도 기자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단지 안. 푸른 하늘 아래,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청량했다.

아파트 가장자리쪽으로 향했다. 끝에 다다랐다. 거기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높고 투명한 '유리 방음벽'이 우뚝 서 있었다. 그 너머는 차도였다.

유리 방음벽 코 앞까지 들어가봤다. 수풀을 헤치고 잔디밭 안쪽, 마른 땅으로.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다.



박새가 죽어 있는 위치는 투명방음벽 바로 아래쪽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박새가 죽어 있는 위치는 투명방음벽 바로 아래쪽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인근 땅쪽을 유심히 두리번거렸다.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래도 발견하진 않길 바랐다. 두근거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그마한 박새의 사체였다. 손바닥만큼 작았고, 꽁지가 길었고, 회색과 흰색 털이 섞여 있었다. 마른 낙엽 사이에 고개를 박은 듯한 자세로, 그대로 죽어 있었다.



명복을 빌며, 죽은 박새 위에 마른 낙엽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사진=남형도 기자명복을 빌며, 죽은 박새 위에 마른 낙엽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무렇게나 던져진 새가 마음 쓰였다. 무릎을 웅크린 뒤 새를 잡았다. 앞을 바라보듯 반듯하게 놓았다. 그 위에, 울긋불긋 마른 낙엽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평소 잘 찾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명복을 빌었다. 아무 장벽 없는 세상에서 훨훨 날게 해달라고.

1㎞ 길이의 아파트 '유리 방음벽'…새들 지속적으로 부딪혀 죽어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에 높다랗게 세워진 투명방음벽. 새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혀, '무덤'이 되는 경우가 많다./사진=남형도 기자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에 높다랗게 세워진 투명방음벽. 새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혀, '무덤'이 되는 경우가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ㄱ모 독자에게 제보를 받았었다. 지난달 17일이었다.


"투명 방음벽으로 인해 많은 새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관리실, 입주자대표회의에 건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 중입니다."

ㄱ씨는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었다.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허망하게 죽는 걸, 차마 모른척하지 못했던.

새들이 비행하다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이유는 투명성, 반사성, 야간 조명 때문이다./사진=녹색연합새들이 비행하다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이유는 투명성, 반사성, 야간 조명 때문이다./사진=녹색연합
새들이 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을까. 유리창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달리 새들은, 눈이 측면에 있다. 시야가 좁아져 코앞의 유리 구조물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거다. 비행하는 속도는 시속 30~70㎞. 그러니 유리창에 부딪히면 달걀 정도 강도인 두 개골이 터져서 죽는다. 연간 800만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2018년, 환경부 통계).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ㄱ모 독자 제공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ㄱ모 독자 제공
그의 제보에 따라, 해당 아파트 단지에 와봤다. 투명 방음벽이 차도를 따라 기다랗고 높게 세워져 있었다.

아파트 안쪽으론 나무가 많아, 새들이 그 사이를 자주 날아다녔다. 반사된 유리창이 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변은 새들이 머물기 좋은 식생이 워낙 많았다. 작은 새들, 까치, 비둘기 등이 자주 보였다. 방음벽 근처에 오려 할 때마다 부딪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ㄱ모 독자 제공서울 송파구 모 아파트 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ㄱ모 독자 제공
해당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이와 관련해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관리실에서도 문제는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실에서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의결이 난 건 없다""투명방음벽 구간이 1㎞에 달해 비용이나 이런 게 많이 들어 고심 중이다"라고 했다.

'충돌 방지 스티커' 있지만, 전체 70% 민간 건축물에 적용 어려워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흔적./사진=녹색연합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흔적./사진=녹색연합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참매, 새매까지, 하루 평균 2만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오죽하면 '눈 깜빡할 새의 죽음'이라 부를까.
유리창에 충돌해 죽은 새들을 기록하는 '네이처링' 플랫폼./사진=네이처링유리창에 충돌해 죽은 새들을 기록하는 '네이처링' 플랫폼./사진=네이처링
자연관찰 플랫폼 '네이처링'에선 유리창에 충돌한 새들을 기록할 수 있다. 통계를 보니, 2018년 7월부터 현재까지 4만7629마리가 유리에 부딪혀 죽은 모습이 관찰되었다. 지역도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었다. 종류별로는 멧비둘기가 6881개로 가장 많았고, 참새(2474개), 직박구리(1870개), 물까치(1490개), 박새(1243개) 등으로 뒤를 이었다. 월별로는 10월이 가장 많았다.
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녹색연합 활동가들. 작은 점들 덕분에 통과할 공간이 없단 걸 인식하게 되고, 새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사진=녹색연합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녹색연합 활동가들. 작은 점들 덕분에 통과할 공간이 없단 걸 인식하게 되고, 새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사진=녹색연합
이를 막기 위해선 '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면 된다. 높이 5cm, 폭 10cm 간격으로, 작은 점들을 붙여주는 거다. 그러면 새들이 창문을 피할 확률이 93%로 높아진다. "여긴 유리창이니 날아오지 말아"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거다.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새 친구'라 불리는 시민들은, 2019년 봄부터 현재까지 투명 유리창, 방음벽 등에 스티커를 계속 붙이고 있다.

지난 6월 11일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공공기관이 새충돌을 줄일 수 있게 관리하도록 법이 바뀐 거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자치구는 저감조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녹색연합이 지난 6월 서울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새 충돌 저감 조치를 시행한 건 구로, 금천, 노원구 세 곳뿐이었다. 처벌 조항도 없어서다.
국도변 투명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녹색연합국도변 투명방음벽 아래에 죽어 있는 새./사진=녹색연합
또 전체 건물의 70%인 '민간 건축물'엔 해당 법을 강제할 수 없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 "아파트면 민간 건물이고 강제 사항이 아니라서, 건축법을 바꾸는 것 말고는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민간 단위로 적용되는 건 아직 어렵단 얘기였다. 비용도 만만찮다. 유 활동가는 "재작년에 용인 아파트를 모니터링하고 새 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이려했더니 1000만원이 넘게 들더라"라고 했다.

다만 희망적인 건 인식도, 제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단 것. 유 활동가는 "우리나라가 (새 충돌 문제에 대해) 문제 인식 갖게 된 건 얼마 안 됐지만, 변화가 빠르다고 보고 있다"며 공공기관부터 저감조치를 정착시켜, 차츰 민간까지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