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만난 한 저축은행 대표가 건넨 말이다. 연말 100조원 수신경쟁의 힌트였다. 그의 걱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더 구체화되고 현재화를 앞두고 있을 뿐이다.
시작은 레고랜드 사태였다. 지방 정부이긴 했지만 정부가 돈을 갚지 않는다고 했다. 가뜩이나 채권시장 투자심리도 좋지 않았던 때다. 뺨 맞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다. 금리가 급등했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채권 금리가 많이 올랐다.
이후부터는 정해진 수순이다. 가장 안전한 은행보다 덜 안전하다고 평가받은 저축은행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만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연말 퇴직연금시장을 둘러싼 경쟁으로 예금금리는 더 뛰었다. 예금금리가 높아지니 대출금리도 덩달아 뛰었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곡소리가 들렸다. 돈 없는 서민들은 높은 금리에 이자 갚는데 허덕였다. 고물가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는 고금리 짐까지 지게 됐다. 장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민들의 돈줄도 막혔다. 금리가 올랐지만 20% 법정최고금리에 막혀 제도권 금융권 끝자락인 대부업체는 서민들에게 돈을 내주지 못했다. 저축은행은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다가 적자가 발생했다. 최대한 돈은 굴리지 않는 것이 적자폭을 줄이는 방법이다보니 '대표 서민금융회사'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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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금융당국의 악수 부작용은 심각했고 오래 갔다. 금융당국은 이제 정상화에 나섰다. 악수를 되풀이할 순 없었다. 일명 F4라 불리는 우리경제를 책임지는 경제수장들은 100조원 수신경쟁에 불쏘시개가 될만한 걸 만들지 말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우선 은행채 발행 한도를 모두 풀었다. 예금자보호한도도 당장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올해초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이후만 해도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지만 현재로서는 득보단 실이 많다는 게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살얼음을 걷는 상황에서 변수가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우크라이아 전쟁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중동분쟁은 역사적으로 국제 유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시장경제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손탄다'는 말이 있다. 한번 손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손탄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손을 타게 한 어른도 마찬가지다. 손 탄 시장의 후유증으로 필요 이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