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용과 자료, 과연 정확한가요?

머니투데이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2023.10.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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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출처·인용문 정확도와 내용 적절성 점검해야 글 신뢰 확보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백우진 글쟁이㈜ 대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을 공개석상에서 인용한 사람은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다. 지난 5일 한국수출입은행 대강당에서 열린 ‘신(新)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에서다. 기존 법을 부분적으로 고칠 게 아니라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한 말이다.

그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해온 게 다름 아닌 외국환거래법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라는 점에서 대단한 자기반성이 아닐 수 없다. 김 국장은 “외환제도를 개편할 때마다 기존 규제의 당위성이 부각되면서 관성적으로 규제가 존치되곤 했다”며 “모든 규제의 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서경호, 복잡하고 몰라서 못 지키는 외환법…200쪽 위반사례집 나올 정도,
중앙일보, 2022.07.12.



이 글의 맥락에서 이 칼럼의 주목할 대목은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이다. 필자는 ‘아인슈타인이 한 이 말’이라고 쓰지 않았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는 대개 아인슈타인의 경구라고 인용되지만, 실은 그가 한 말이 아니다. 필자는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이라고 표현했다고 나는 추측한다.



글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가 인용이다. 인용에는 가능한 데까지 출처를 밝혀야 한다. 출처는 인용문에 힘을 싣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출처가 제공돼야 독자는 관련된 내용을 더 파악하거나 맥락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갈무리해둔 자료를 활용하거나 새로 자료를 찾아서 자신의 글에 활용하는 일은, 자료만 있다면야 쉬운 일이라고들 여긴다. 그러나 인용에도 함정이 있다. 자료의 바다에는 정확한 내용이 많지만, 오류도 넘쳐난다. 또한 정확한 문헌을 인용하더라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자료 중 해당 부분을 적확하게 인용해야 한다. 다음 글을 놓고 이를 생각해보자.

‘꽃게’의 ‘꽃’도 ‘꼬챙이(곶)’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등에 꼬챙이처럼 생긴 두 뿔이 있기 때문에 ‘곶해(串蟹)’로 부른다고 했다. 몸통이 둥그런 대게와 달리 실제로 꽃게는 등의 양쪽 끝이 뾰족하다. 그러나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꽃게를 ‘화해(花蟹)’라 적고 있어서 어원을 단정하기가 어렵다.
출처: 한국일보, [우리말 톺아보기] 곶감 꼬치, 2023.06.30.


이 인용문은 전문가가 일간 활자매체에 기고한 글 중 한 문단이다. 더욱이 실학자 정약전의 책을 인용했다. 그래서 균형 잡힌 글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자산어보〉는 흑산도에 귀양보내진 정약전(:1760?1816)이 저술한 어류학서다. 흑산도 근해 수산동식물 155종의 명칭과 분포, 행태, 습성, 이용 등을 전한다. 이 책 가운데 화해(花蟹) 표제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화해(花蟹)
크기는 농해와 같고 등이 대그릇처럼 높다. 왼쪽 집게발이 특별이 크고 붉은색이며 오른쪽 집게발은 가장 작고 검은색이다. 온몸에 대모처럼 화려한 무늬가 있다. 맛은 싱겁다. 소금기 있는 진흙 속에 있다.

○ 이청의 설명
소송이 말하기를 “한쪽 집게발은 크고 한쪽 집게발은 작은 것을 ‘옹검’이라고 하는데 일명 걸보라고도 한다. 항상 큰 집게발로 싸우고 작은 집게발로 먹이를 먹는다. 또 ‘집화’라고도 하는데 집게발이 붉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화해다.
출처: 한국일보, [우리말 톺아보기] 곶감 꼬치, 2023.06.30.

사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이 설명은 “왼쪽 집게발이 특별히 크고”라면서 집게발이 비대칭이라고 했으나, 꽃게는 집게발이 비대칭이 아니다. 특히 이 설명에는 꽃게의 가장 큰 특징인 좌우로 솟아난 꼬챙이가 서술되지 않았다.

정약전 문헌 중 하필 다른 설명을 인용
한 가지 가능성은 〈자산어보〉의 화해(花蟹)는 오늘날 우리가 꽃게라고 부르는 어종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표제어가 시해(矢蟹)인데, “두 눈 위에 1치 남짓 되는 송곳 같은 것이 있는데 이 때문에 ‘시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양쪽에 송곳이 솟아난 모양이라면 현재 이름으로 꽃게가 아닐까?

시해(矢蟹)의 외양을 더 읽어보자. “보통 해는 달릴 수는 있으나 헤엄칠 수 없는데 유독 시해만이 물에서 헤엄칠 수 있다(부채처럼 생긴 다리 때문이다)”라고 서술되었다. 꽃게 다리 모양이 떠오르는가? 사진을 찾아보면, 다리가 양쪽에 각각 다섯 개씩 있는데 가장 아래쪽의 한 쌍은 부채처럼 넓적하고 평평하다.

이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의 꽃게는 〈자산어보〉에서 화해(花蟹)가 아니라 시해(矢蟹)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짐작할 뿐이다. 이 짐작을 확인받으려면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꽃게
한자어로는 (중략) 시해(矢蟹)라 하였고, 우리말로는 것칠에·살궤(殺)·곳게(朝鮮語辭典, 1920)라 하였다. 학명은 Portunus(Portunus) trituberculatus(Miers, 1876)이다. 형태는 옆으로 매우 긴 마름모꼴의 아래위 모서리를 끊어버린 모양이다. 큰 것은 갑각의 길이 10㎝, 너비 22㎝에 달하며 이마에 3개의 톱날과 같은 돌기가 있다. 갑각의 앞쪽 양옆 가장자리에는 각각 9개의 톱날 모양을 한 돌기가 있는데 맨 뒤의 한 개는 매우 길다. 양집게다리는 크고 길며 가시를 가지고 있고 억세게 생겼다. 네 쌍의 걷는 다리 가운데에서 맨 뒤의 것은 납작하여 헤엄치기에 알맞도록 되어 있다. (하략)
출처: 한국일보, [우리말 톺아보기] 곶감 꼬치, 2023.06.3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이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꽃게가 〈자산어보〉의 시해(矢蟹)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꽃게는 화살이나 송곳처럼 양쪽으로 삐죽 솟아난 돌기 모양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성호사설〉을 비롯한 자료의 어원 설명이 타당하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현재에 안주하면 그 조직은 뒤처지고 급기야 도태되고 만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는 실험이 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에 넣으면 금세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담그고 수온을 서서히 올리면 나올 때를 놓치고 그 안에서 죽고 만다는 실험이다.

출처 제시되지 않았다면 검증 필요
누구나 간단히 실험해서 사실임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이 이야기는 출처가 없이 인용된다. 그러나 출처가 없다는 사실은 인용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할 근거가 된다.

개구리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09년 7월 13일자 뉴욕타임스(NYT)에 ‘개구리 삶기(Boiling the Frog)’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 미국이 경제위기와 지구온난화에 조기 대응하지 않는다면 파국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덧붙이기를 “개구리는 실제로는 뛰쳐나올 것이지만”이라고 했다. 크루그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생물학에는 어두울지 모른다.

이제 권위 있는 판단을 소개할 때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는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냄비 속 개구리는 “19세기에 시행한 실험으로 잘못 전해진 거짓부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구리 실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표제어 ‘boiling frog’로 찾으면 나온다.

자, 그렇다면 냄비 속 개구리 실험 이야기는 인용하면 안 될까? 필자는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하지만, 글에 사실만 쓸 이유는 없다. 이솝 우화도 적절하게 인용하면 된다. 우화라는 전제 아래. 따라서 개구리 실험도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인용하면 된다. “물속에 개구리를 담가놓고 서서히 가열한다는 실험 이야기는 과학이 아니라 우화다. 그러나 변화와 그에 대한 인간·조직의 대응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어서 자주 인용된다.”

인용은 정확히, 출처도 정확히 제시하자. 서두에 필자는 아인슈타인이 하지 않은 말을 인용한 글을 인용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한테는 그가 하지 않은 말까지 달라붙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인슈타인 어록 중에도 그의 발언이 아닌 게 여럿 있다. 각 명언에 발언자가 아인슈타인일 경우 (O), 아닐 경우 (X)로 표시한다.

- 내가 경외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안에 있는 도덕적 우주다. (X)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O)
- 제3차 세계대전에서 뭐가 무기로 사용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제4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될 무기는 안다 - 그건 짱돌이다! (O)
- 수학을 못한다고 걱정하지 마라.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이 걱정한다. (O)
-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O)
-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X)

출처에 관한 이 사실 확인은 약사 출신의 지식공유자로 과학 서적을 번역하는 양병찬 씨가 2015년 3월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다. 그는 ‘내가 경외하는 것은 두 가지’로 시작되는 말은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1788년 〈실천이성비판〉에서 했다고 정확한 출처를 댄다. 인용도 출처도 정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글이 신뢰받지 못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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