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줄줄이 밀리나요" 발동동…'사법부 수장' 공백, 피해는 국민 몫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정경훈 기자, 박다영 기자 2023.10.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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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사법 공백 유감(종합)

대법원장 35년만의 낙마…한달뒤 헌재까지 초유의 사법공백 초읽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 9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입술을 굳게 닫고 있다. /사진=뉴시스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 9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입술을 굳게 닫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가 6일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을 부결하면서 후보자조차 없는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현실이 됐다. 노태우 정부 당시인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부결 이후 35년 만이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12일째 이어지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이 새 후보자를 지명하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 동의안을 가결해야 하는 만큼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최소 한달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달 10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데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극한대립이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부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새 후보자 임명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하면 오는 11월10일로 예정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임기 만료와 맞물려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과 헌재 수장이 모두 공석인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소장 역시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면 국회에서 임명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헌재소장 후보자는 2017년에도 한차례 국회에서 임명 동의안이 부결된 적이 있다. 다만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이 모두 공석인 적은 지금껏 한번도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기상으로는 임기가 한달여 남은 지금부터 후임 헌재소장이 물망에 오르고 세평이 나올 때인데 대법원장 공백 사태에 밀려서인지 이름도 거론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장 임명 문제가 정치 현안이 된 이상 헌재소장까지 초유의 대법원·헌재 수장 공석 사태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장 공석이 길어지면서 재판 지연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대법원만 해도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진행이 어렵다. 대법원 심리·선고가 늦어지면 하급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임 대법원장 체제에서 추진하려던 사법혁신이나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 후임 제청 절차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재판 지연으로 가뜩이나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신속하게 재판 받을 국민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권이 후속 논의와 협의에 머리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총 투표수 295명 중 가 118표, 부 175표, 기권 2표로 부결했다. 전체 의석의 과반인 168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내 재판 어쩌나…수장 공백에 멈춘 대법원, 국가 사법 기능 제동
대법원/사진=뉴스1대법원/사진=뉴스1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와 선고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와 판결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국가 사법 기능에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이후 논의를 통해 최근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리했다. '현상 유지'로 제한되는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를 두고 명확한 규정이 없는 만큼 판결의 신뢰성을 고려해 사건 심리와 선고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한대행체제에서 판결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판결 후 일부 사건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판결 효력을 문제 삼을 수 있다"며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직전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현재 전원합의체에 회부, 심리 중인 사건은 5건으로 집계된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매달 한차례 전원합의체를 열고 판결을 선고한다. 대통령의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과 국회 인사청문회, 국회 본회의 임명 동의안 표결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이달 전원합의체 선고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문제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길어질 경우 현재 심리 중인 사건 외에도 전원합의체에서 다룰만한 사건이 줄줄이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례를 기다리는 하급심 판결도 영향권에 놓인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원합의체 회부된 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맡은 하급심이 새 법리 도출 가능성 등을 고려해 대법원 결론까지 판결을 미룬 경우가 많았다"며 " 법원의 최대 문제로 꼽히는 재판 지연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 공석 기간이 길어지면 보통 2월 단행되는 법관 인사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판사 출신의 또다른 변호사는 "권한대행체제에서도 매년 정기적으로 해온 인사는 단행하겠지만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위원회를 거쳐 선발되는 인사는 또다른 문제"라며 "권한대행이 단순 전보 인사를 넘어선 인사권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냐를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균용 임명안 부결, 술렁이는 법원…"당론정치의 비극"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09.20.[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09.20.
"사법부 수장의 역할과 권한을 고려하지 않은 당론 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서울 지역 A판사)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 임명 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법원 안팎에서 사법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입법부의 정치적 결정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정치권이 사법부 수장 임명 문제에서조차 정치적 갈등을 이어가면서 사법부 기능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대법원장 자리는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뒤 이날까지 12일째 공석이다.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법원 주요 사건을 심리·선고하는 전원합의체는 물론, 신임 대법원장 체제에서 추진하려던 사법개혁 현안도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대법원장은 헌법상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수이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운 후보를 지명하는 절차를 고려하면 최소 한달 이상 공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대법원장 자리가 비어 있으면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며 "사건 심리 등에 대한 자질과 균형감을 검증받고 임명되는 대법관과 달리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역량과 비전을 검증해 임명하는 자리인 만큼 선임 대법관이라고 해도 대행하는 데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국회에서 재판 지연 등의 문제로 사법부를 비판하는데 수장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재판지연 문제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대법원장이 임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대법원장 없이 오는 10일부터 국정감사를 치러야 한다는 데 따른 부담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그만큼 대법원장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가결해 달라고 총력전을 펼쳤던 것"이라며 "수장 없이 국감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도권 다툼을 이어가면서 언제쯤 신임 대법원장 임명 문제가 해소될지 가늠키 어렵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국회 일정상으로 보면 이달 27일 국감을 마친 뒤 다음 본회의가 열리는 11월9일 이전에 새로운 후보자를 임명하고 인사청문회까지 마칠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사법부를 책임지는 대법원장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법원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는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대법원장 임명은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국회에서 좀더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균용 임명 불발…대법원장 후보자 오석준· 이종석·홍승면 다시 물망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다음 대법원장 후보자로 오석준 대법관(61·사법연수원 19기)과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62·15기), 홍승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59·18기) 등이 다시 거론된다. 이 후보자 지명 전 유력하게 검토된 인물들로 재판 지연과 인사 문제 등 사법부가 직면한 숙제를 풀어나갈 적임자로 꼽혔다는 평가다.

오 대법관은 현직 대법관으로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리 없이 통과했던 데다 두 차례 법원행정처 공보관을 지내 대내외 소통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어수선해진 법원을 수습하려면 대법원과 법원 내부 사정에 밝은 대법관 중에서 차기 대법원장이 임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대법관 구성을 고려하면 오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발탁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오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면 대법관을 1명 더 임명해야 한다.

이 재판관은 대법관 경력은 없지만 법률 원칙과 법리 해석에 뛰어난 법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추천을 받아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도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한 편이다.

다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권한쟁의심판에서 이 재판관이 검수완박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는 점을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 대법원장 임명 문제가 사실상 정치적인 현안이 된 만큼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홍 부장판사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6월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던 법관이다. 2013~2016년 대법원 사건 법리 검토를 총괄하는 선임재판연구관,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내면서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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