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에 있는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다 올해 처음 독립하게 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최수지씨(20·가명)는 이렇게 털어놨다. 영아 시절(16개월)부터 시설 이모님과 언니·오빠, 친구들과 지낸 그에게 인생의 '첫 독립'은 다른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설렘보다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혼자 지낸다는 것'"이라며 "잔디밭에서 공차기도 하고 이모가 해주시는 밥을 먹었는데, 정말 외롭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갔고,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바깥에서 놀다가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며 "시설이 깊은 산 속에 있는 탓에 통학버스가 아니면 외부로 나가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내에서 놀기도 어려워 시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고도 했다.
최씨 역시 보호시설에서 나오기 전 독립에 대한 준비가 별도로 이뤄지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경제와 약물오남용 교육 등은 들었지만, 다른 준비는 없었다"며 "자립할 때 필요한 가전제품 등을 시설 옆에 있는 절에서 후원받은 정도"라고 말했다. 집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연계된 LH전세임대보증금을 지원받아 마련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꿈장학생에 선정된 후 미용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경험을 살려 관련 학과에도 진학했지만, 경제적 독립에 대한 걱정은 지속됐다. 최씨가 만24세까지 가능한 보호연장을 신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필요한 지원을 추가로 받고, 자립을 더 잘 준비하기 위해 신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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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소하긴 했지만, 요즘도 외로움을 느낄 때면 최씨는 이전까지 머물렀던 시설을 찾고 있다. 그는 "현재 자립활동가모임에 참여하며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교육을 듣고 있는데,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자립준비청년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나 지원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현재 가정 혹은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예비 자립준비청년도 2만명 가까이 된다"며 "이들을 보호하는 동안 사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뭐였는지 묻고, 전 단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체계적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에게 기대야해…홀로 세상에 나온 자립준비청년, 3명 중 1명 빚더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내건축과를 전공해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다 보니 경제 상황에 대한 걱정이 큰게 사실. 최씨는 "취업을 해서 괜찮긴 하지만, 있었던 시설의 규모가 작아 도움이 적어 독립했을 당시 모아놓은 돈이 적었다"며 "기본적으로 자산에 대한 고민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멘토 등 도와주려는 사람들이나 기관이 많아도 자립 준비를 하는 단계에서의 친구들이 어리다 보니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명 중 3명 "실생활에서 도움받을 사람 없어"
가장 큰 문제는 지원이 많아도 자립하기 전 사전 준비 단계에서 이를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에 나오기 전 독립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막막함을 토로했다. 지원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외로움은 어떻게 극복할지 등을 고민했고, 조언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는 이들도 많았다. 또 독립에 필요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이 절실하단 호소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드러났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자립준비청년 2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설퇴소청년 생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립준비청년 중 주거·금융·법률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경우는 28.1%였고, 취업·진로에 관한 조언이나 정보를 줄 수 없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15.1%였다. 내가 돈이 필요할 때 갑자기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는 28.2%였다.
자립준비청년에게 경제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거나, 대학을 진학했더라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청년들이 진학이나 취업 등 진로 준비를 위해 가장 희망하는 지원이 대학 장학금 지원(23.5%)으로 조사되며, 경제적인 고민이 나타나기도 했다. 36.2%는 현재 채무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래 청년들보다 고립감·외로움 심해
심리·정서적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나타났다. 고립감을 느끼는 정도에서는 절반 가까이(45.6%)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 비율은 32.1%였다. 연구진은 "30세 이하 청년들 평균보다 높은 수치"라며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우 청년기 이전부터 다양한 사건을 경험했고,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아 이들에 대한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자립준비청년들은 대부분 아동·청소년기에 부정적인 경험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했는데, 절반 이상인 55.9%가 '갑자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된 경험'을 꼽았다. 가정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짐(51.1%), 모르는 사람들과 한방에서 생활한 경험(43.7%)이 그 뒤를 이었다.
자립한 이후의 관리 사각지대도 노출됐다. 지난 6월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자립준비청년의 복지제도 이용 유형화를 통한 효과적인 지원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보호조치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 1만2282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속적으로 연락이 닿는 경우는 16%뿐이었다. 한 번만 연락이 된 사례는 17%였고, 4%는 연락이 두절됐다.
◇"지원책 활용토록 관리, 일자리·정서 지원 중요"
서울시 자립준비청년 전용공간 '영플러스서울' 개소식 모습 /사진=뉴스1
현장에선 청년들이 보호종료 되기 전 지원책들을 인지하고, 활용하게 하는 게 중요하단 조언이 나왔다. 정희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옹호사업팀장은 "많은 제도와 지원사업들 속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고,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도 많지만 능력 있는 청년들에게만 몰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보호종료를 앞둔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정보를 묻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영국의 '개인상담사 지원제도' 같은 것들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적인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일자리 지원과 정신건강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일자리의 경우 단순히 연결만 해주는 게 아닌 청년이 해당 일자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숙련도를 높여주는 교육을 하는 식으로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