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야" 공부 꿈 못 꾼다…20살 '홀로서기 청년' 3명 중 1명 빚더미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3.10.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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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사각지대 놓인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上)

편집자주 최근 보육원과 같은 복지시설 보호가 끝난 '자립준비청년'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사회적 지원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1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정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선 어린 수요자들과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대로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단 지적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안정적인 홀로서기를 위해 필요한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친구들과는 다른 '첫 독립'…준비 없이 세상 혼자 나와 무섭다"
/삽화=게티이미지뱅크 /삽화=게티이미지뱅크


"구체적인 준비 없이 혼자 지내야 한다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다 올해 처음 독립하게 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최수지씨(20·가명)는 이렇게 털어놨다. 영아 시절(16개월)부터 시설 이모님과 언니·오빠, 친구들과 지낸 그에게 인생의 '첫 독립'은 다른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설렘보다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혼자 지낸다는 것'"이라며 "잔디밭에서 공차기도 하고 이모가 해주시는 밥을 먹었는데, 정말 외롭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최씨가 시설에 처음 맡겨지게 된 건 부모님 모두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였다. 그는 "워낙 어릴 때라 정확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설 이모님께 전해 듣기로는 엄마, 아빠 두 분 다 알코올 중독이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시설에 입소한 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은 가능했지만, 학교의 다른 친구들처럼 지내는 건 어려웠다.

최씨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갔고,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바깥에서 놀다가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며 "시설이 깊은 산 속에 있는 탓에 통학버스가 아니면 외부로 나가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내에서 놀기도 어려워 시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고도 했다.



최씨처럼 매년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에서 생활하다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 2000여명이 사회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름 자립준비청년 두 명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정부는 관련 정책 등을 통해 보완에 나섰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준비 부족 등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씨 역시 보호시설에서 나오기 전 독립에 대한 준비가 별도로 이뤄지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경제와 약물오남용 교육 등은 들었지만, 다른 준비는 없었다"며 "자립할 때 필요한 가전제품 등을 시설 옆에 있는 절에서 후원받은 정도"라고 말했다. 집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연계된 LH전세임대보증금을 지원받아 마련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꿈장학생에 선정된 후 미용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경험을 살려 관련 학과에도 진학했지만, 경제적 독립에 대한 걱정은 지속됐다. 최씨가 만24세까지 가능한 보호연장을 신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필요한 지원을 추가로 받고, 자립을 더 잘 준비하기 위해 신청했다"고 말했다.


퇴소하긴 했지만, 요즘도 외로움을 느낄 때면 최씨는 이전까지 머물렀던 시설을 찾고 있다. 그는 "현재 자립활동가모임에 참여하며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교육을 듣고 있는데,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자립준비청년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나 지원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현재 가정 혹은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예비 자립준비청년도 2만명 가까이 된다"며 "이들을 보호하는 동안 사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뭐였는지 묻고, 전 단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체계적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에게 기대야해…홀로 세상에 나온 자립준비청년, 3명 중 1명 빚더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보육원에서 지내다 2년 전 자립을 한 최예지씨(23). 현재 서울 동작구의 한 자립생활관에서 지내는 최씨가 독립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정보의 부재'였다. 그는 "자립을 준비할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집을 구하거나, 그룹홈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줄 몰랐다"며 "먼저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자립 준비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내건축과를 전공해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다 보니 경제 상황에 대한 걱정이 큰게 사실. 최씨는 "취업을 해서 괜찮긴 하지만, 있었던 시설의 규모가 작아 도움이 적어 독립했을 당시 모아놓은 돈이 적었다"며 "기본적으로 자산에 대한 고민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멘토 등 도와주려는 사람들이나 기관이 많아도 자립 준비를 하는 단계에서의 친구들이 어리다 보니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명 중 3명 "실생활에서 도움받을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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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최씨와 같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2000명 이상 사회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름 자립준비청년들의 극단 선택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잇따라 대책들을 내놨지만, 현물과 주택 등 경제적 지원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지원이 많아도 자립하기 전 사전 준비 단계에서 이를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에 나오기 전 독립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막막함을 토로했다. 지원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외로움은 어떻게 극복할지 등을 고민했고, 조언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는 이들도 많았다. 또 독립에 필요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이 절실하단 호소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드러났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자립준비청년 2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설퇴소청년 생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립준비청년 중 주거·금융·법률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경우는 28.1%였고, 취업·진로에 관한 조언이나 정보를 줄 수 없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15.1%였다. 내가 돈이 필요할 때 갑자기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는 28.2%였다.

자립준비청년에게 경제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거나, 대학을 진학했더라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졸업을 유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청년들이 진학이나 취업 등 진로 준비를 위해 가장 희망하는 지원이 대학 장학금 지원(23.5%)으로 조사되며, 경제적인 고민이 나타나기도 했다. 36.2%는 현재 채무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래 청년들보다 고립감·외로움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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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학업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청년(45.8%)들은 그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했고, 경제사정이 어려워서란 응답도 15%나 됐다. 반면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흥미가 없어서란 응답은 14.2%에 그쳤다.

심리·정서적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나타났다. 고립감을 느끼는 정도에서는 절반 가까이(45.6%)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 비율은 32.1%였다. 연구진은 "30세 이하 청년들 평균보다 높은 수치"라며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우 청년기 이전부터 다양한 사건을 경험했고,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아 이들에 대한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자립준비청년들은 대부분 아동·청소년기에 부정적인 경험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했는데, 절반 이상인 55.9%가 '갑자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된 경험'을 꼽았다. 가정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짐(51.1%), 모르는 사람들과 한방에서 생활한 경험(43.7%)이 그 뒤를 이었다.

자립한 이후의 관리 사각지대도 노출됐다. 지난 6월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자립준비청년의 복지제도 이용 유형화를 통한 효과적인 지원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보호조치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 1만2282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속적으로 연락이 닿는 경우는 16%뿐이었다. 한 번만 연락이 된 사례는 17%였고, 4%는 연락이 두절됐다.

◇"지원책 활용토록 관리, 일자리·정서 지원 중요"

서울시 자립준비청년 전용공간 '영플러스서울' 개소식 모습 /사진=뉴스1서울시 자립준비청년 전용공간 '영플러스서울' 개소식 모습 /사진=뉴스1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9일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전담인력을 올해 180명에서 내년 230명까지 확충하고, 자립수당을 월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마다 자립정착금으로 1000~150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의료비 지원 등도 있다. 서울시의 경우 내년부터 자립정착금을 2000만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100인 멘토단'을 꾸려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와 정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 등을 내놨다.

현장에선 청년들이 보호종료 되기 전 지원책들을 인지하고, 활용하게 하는 게 중요하단 조언이 나왔다. 정희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 옹호사업팀장은 "많은 제도와 지원사업들 속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고,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도 많지만 능력 있는 청년들에게만 몰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보호종료를 앞둔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정보를 묻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영국의 '개인상담사 지원제도' 같은 것들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적인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일자리 지원과 정신건강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일자리의 경우 단순히 연결만 해주는 게 아닌 청년이 해당 일자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숙련도를 높여주는 교육을 하는 식으로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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