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어디까지 올리냐고요?"…'빚 돌려막기' 벼랑 끝 한전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세종=조규희 기자, 세종=최민경 기자 2023.10.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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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리가 알아야 할 전기요금

편집자주 신임 산업통상자원부·한국전력공사 수장이 입을 모아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전력요금이 생산비용을 못따라가는 탓이다. 최근 몇년간 지속된 한전의 역마진 구조는 50조원에 육박하는 단기 적자와 200조원을 넘는 한전 부채로 돌아왔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그에 따른 에너시 소비량 감축은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전의 적자구조 해소를 위한 전기요금 현실화 방안과 그에 따른 가계 소비 충격 최소화 방안을 모색해 본다.

연료비 단가동결이 끝이 아니라고? 전기요금, 이렇게 책정한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인상됐던 전기요금이 3분기(7∼9월)에는 동결됐다.  한국전력은 21일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상가밀집지역 외벽에 전력량계량기의 모습. 2023.6.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인상됐던 전기요금이 3분기(7∼9월)에는 동결됐다. 한국전력은 21일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상가밀집지역 외벽에 전력량계량기의 모습. 2023.6.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가 4분기 연료비조정단가를 kWh(킬로와트시) 당 5원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보는 등 원가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전기요금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연료비조정단가를 기존 상한선과 동일하게 유지한 것이다.

재무위기로 전력공기업인 한국전력 (19,990원 ▼10 -0.05%)공사가 벼랑 끝에 몰린 탓에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인 전기요금 인상여부를 검토할 예정인데 물가상승에 따른 여론 악화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등 넘어야할 산이 여전하다.



30일 전력당국에 따르면 주택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에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을 더해 결정된다. 이때 사용량에 따라 적용단가가 달라지는 '누진제', 동하절기 등 계절에 따른 조정단가 등 변수를 적용한다.

이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발전 △온실가스 감축 비용△석탄발전 감축비용에 해당하는 기후환경요금은 kWh당 9원으로 올해 초 인상 이후 조정예정이 없다. 국제유가 등 전기생산에 직접 영향을 주는 원자재 가격 상승·하락분을 반영하기 위한 연료비조정단가는 kWh당 5원으로 유지됐다.



이번 연료비조정단가의 기준이 되는 3분기 유연탄과 LNG(액화천연가스), 벙커C유 등 원자재 가격은 하락했지만 지난해 대선 전까지 원자재 상승국면에서 연료비조정단가 인상을 미룬 탓이다. 부채가 200조원, 누적적자가 47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재무상황을 고려해 연료비조정단가를 유지했다는 게 전력당국의 설명이다.

연료비조정단가는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상한선인 kWh당 5원을 유지해 온 탓에 국제유가가 추가로 상승하더라도 더 올릴 수 없는 요금이다. 결국 올해 4분기 전기요금 향방은 전력량요금단가 조정에 달려있다. 매 분기마다 결정하도록 돼있는 연료비조정단가 유지를 놓고 4분기 전기요금 동결 신호가 아니냐는 해석과 추가 인상 여지가 남아있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전기요금 어디까지 올리냐고요?"…'빚 돌려막기' 벼랑 끝 한전
최근 취임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김동철 한전 사장 모두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전은 대규모 누적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요금 조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한전의 누적적자가 생산가격보다 싼 전기요금의 역마진 구조가 지속된 탓이라는 판단이다.


김 사장 역시 취임사를 통해 "당면한 과제는 벼랑 끝에 선 현재의 재무위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전기요금 정상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최근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급등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 장관이 "(전기요금 인상을) 국민이 납득하려면 한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전기요금 인상의 선결조건으로 한전의 추가 자구책 마련을 주문한 데 이어 김 사장은 취임 직후 비상경영혁신위원회를 가동시켰다. 추석연휴 이후 한전의 추가 자구책 제출과 전기요금 조정 작업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과 가계부담 증가 등은 전기요금 조정의 변수로 남았다. 앞서 산업부와 한전은 지난해 한전 경영정상화를 위한 전기요금 필요인상분은 kWh당 51.6원으로 계산해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올해 전기요금 인상분은 산업부 등이 제시한 필요인상분의 절반이 채 되지않는 kWh당 21.1원에 그친 상황. 최근 1년간 40% 넘게 오른 전기요금 부담이 물가상승을 부르고 자칫 민심이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2024년 4월 총선이 예정된 점을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의 키를 쥐고있는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숨만 쉬어도 하루 이자 '70억'…빚더미 한전, 또 역마진 위기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인상됐던 전기요금이 3분기(7∼9월)에는 동결됐다.  한국전력은 21일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2023.6.21/사진=뉴스1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인상됐던 전기요금이 3분기(7∼9월)에는 동결됐다. 한국전력은 21일 올해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요금)가 현재와 같은 1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2023.6.21/사진=뉴스1
'숨만 쉬어도' 하루 70여억원의 이자를 충당해야 하는 기업이 있다. 200조원을 넘긴 부채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전력. 이런 상황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여파다.

30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 100달러를 바라보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100달러를 넘어섰던 점을 고려하면 빠른 오름세로 전기요금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한전 입장에서는 역마진이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다.

한전은 지난 2021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19개월 동안 단 한 차례(2022년 6월)를 제외하고는 매월 역마진을 기록했다. 1kWh(킬로와트시)당 역마진 폭(판매단가-구입단가)은 2022년 9월 최대 -70.75원을 기록했다.

현재 한전의 누적적자 규모는 47조원으로 사채 발행까지 합하면 201조원을 넘어섰다.

그나마 올해 4월부터 7월까지는 역마진 구조를 탈피했다. 평균 판매단가는 1kWh 당 △4월 136.23원 △5월 138.83원 △6월 160.98원 △7월 165.75원으로 평균 구입단가 △4월 127.75원 △5월 129.15원 △6월 125.85원 △7월 145.70원을 넘어섰다.

문제는 8월 이후다. 국제유가가 출렁이는 탓이다. 국제유가는 최근 배럴당 100달러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두바이유 기준 지난주 평균 가격은 배럴당 94.4달러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0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는 올해 초 7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7월 80달러를 넘어서며 다시 오름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OPEC+의 감산 조치에 따른 영향이다. 8월 OPEC 오일 리포트에 따르면 OPEC 회원국의 총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4분기 하루당 2910만배럴에서 계속 감소해 올해 5월 2808만배럴, 7월 2731만배럴을 기록했다. 특히 가장 많은 잉여생산력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량을 지난해 4분기 1062만배럴에서 올해 7월 901만배럴로 100만배럴 이상 대폭 감축하며 전체 감산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국제유가가 연내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JP모건은 최근 "석유 감산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유가가 1배럴에 120달러 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례없는 위기에 한전의 수장을 맡은 김동철 사장은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전이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료가격 폭등과 탈원전 등으로 상승한 원가를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며 "최근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급등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는 더더욱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사장은 '제2의 창사'를 각오로 통렬한 내부 반성과 사업 구조 재편도 준비중이다. 그는 "정말 뼈아픈 소리지만, 그동안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보호막, 정부보증이라는 안전판, 독점 사업자라는 우월적 지위에 안주해온 것은 아니냐"며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서 전기요금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중장기적으로 총수익의 30% 이상을 국내 전력판매 이외의 분야에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빚내서 버티는 한전, 그것도 3조 남았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1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8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강원랜드 등 18개 기관이 시살상 낙제점인 D등급(미흡)이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E등급이거나 2년 연속 D등급인 9곳 중 기관장 재임 기간이 짧거나 이미 해임된 기관을 제외한 5곳에 대해서는 기관장 해임을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2023.6.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1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8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강원랜드 등 18개 기관이 시살상 낙제점인 D등급(미흡)이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E등급이거나 2년 연속 D등급인 9곳 중 기관장 재임 기간이 짧거나 이미 해임된 기관을 제외한 5곳에 대해서는 기관장 해임을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2023.6.1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기요금 문제의 나비효과는 채권시장으로 번진다. 한전채(한국전력 채권)는 채권시장을 흔드는 주요 변수다. 누적적자 47조원이 넘는 한국전력공사는 한전채를 발행해 운영자금을 충당한다. 한전채를 발행할 때마다 시장은 흔들린다. 나름 우량채권인 한전채가 나오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그만큼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전채 발행 축소 방침을 세워 연내 발행할 수 있는 금액을 3조원 안팎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채권 시장을 챙기다보면 한전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적자가 지속될 경우 내년 한전채 발행에도 제약이 생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기준 한전채 연간 발행량은 11조9300억원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한전채 발행을 상반기 11조4300억원 대비 3분의 1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정부가 올해 목표로 한 발행량이 최대 15조2400억원임을 감안하면 4분기 발행 가능한 한전채는 3조3100억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7200억원어치 대환 물량을 감안하면 2조원 안팎으로 봐야 한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렸지만 시장 부담을 고려해 발행량 억제 정책을 편 것이다. 한전채가 시장에 쏟아지면 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다시 심화할 수 있다. 신용등급과 금리가 높은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더 힘들어진다.

신용등급 AAA(트리플A)인 한전채는 국내 채권 시장에서 최고 우량주로 꼽힌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규모는 총 31조8000억원, 표면금리는 최고 6%에 달했다. 국채와 다름없는 한전채가 높은 금리로 발행되자 시중 자금은 모두 한전채로 쏠렸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대두된 가운데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다른 기업들은 차환할 자금조자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전채 발행의 기준이 되는 재무 상황까지 적자 지속으로 악화되면 발행한도도 쪼그라든다.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한전은 전년 실적을 기준으로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올해 발행할 수 있는 한전채는 104조6000억원이며 9월 말 한전채 발행 잔액은 68조4500억원이다.

문제는 올해 약 7조원의 영업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적립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 전망대로 7조원의 영업손실이 나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가 약 14조 원으로 감소해 내년엔 한전채를 약 70조원까지만 발행할 수 있다. 4분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신규 한전채 발행을 통한 '빚 돌려막기'도 어려워지는 셈이다.

일각에선 한전채 발행한도를 높일 수 있도록 연내 한전법 개정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오지만 국회가 한전법 개정을 통해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를 확대한 건 불과 1년도 안 됐다. 한전채 발행한도 추가 확대가 회사채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단 것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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