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발표에서 눈에 들어온 부분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공정위는 '국내 오픈마켓 시장'에서 '큐텐+티몬+위메프+인터파크'의 점유율이 8.35%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봤다.
이미 '이마롯쿠'(이마트-롯데-쿠팡)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쿠팡이 만든 이 조어는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이마트와 롯데라는 의미다. 이마트나 롯데도 쿠팡이 가장 큰 경쟁상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신세계그룹이 지마켓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인수한데 이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면서 유로멤버십 '신세계유니버스'를 만든 것도 쿠팡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많은 오프라인 매장을 거느린 롯데와 신세계는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쇼핑의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매장을 계속 리뉴얼하는 동시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반대로 쿠팡 같은 온라인 기반 쇼핑채널은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제공하기 위해 서비스를 고도화시키고 있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내 생활은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장을 구분하지 않는다. 과일이나 채소는 보통 이마트에 가서 사지만 내일 아침에 먹을 과일을 오늘 밤 쿠팡에서도 주문한다. 토요일에는 장을 보러 가족들과 롯데마트에 가지만 의무휴업으로 문을 닫은 일요일에는 편의점에서 사거나 배민의 B마트에서 주문한다. 올리브영에서 가서 화장품을 고르고 직접 발라보지만 실제 구매는 인터넷으로 제일 싸게 파는 곳을 검색해서 한다.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는 전세계적인 트렌드다. 온오프라인 간의 경계만 아니라 산업간 경계도 흐릿하다. 쿠팡은 유통업체이지만 대규모 물류창고와 배송망을 갖춘 물류기업이기도 하다. 심지어 소비자는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자가 되는 시대다.
공정위의 시장획정은 기업결합 심사 때 뿐만 아니라 불공정행위 조사에서도 기본 전제가 된다. 3개월 남은 올해 유통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벤트 중 하나는 공정위의 CJ올리브영의 불공정행위 조사 결과다. 작년부터 시작된 조사 결과는 겨울이 오기 전에 나올 전망이다. 이 조사에서도 핵심은 공정위가 올리브영의 시장을 어떻게 규정짓느냐다. 오프라인 H&B(헬스앤뷰티) 시장으로 한정한다면 올리브영은 절대적 시장지배자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까지 포함한다면 올리브영은 '원오브뎀'이다.

"국내 소비자 약 70%가 모바일 앱으로 쇼핑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가운데 우월적 힘을 갖게 된 온라인 유통업자의 새로운 불공정행위를 제재했다."
'전 국민의 70%가 모바일에서 쇼핑'하는 시대에 공정위는 무너진 온오프의 울타리를 넘어설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선을 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