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로 지킬 교권은 반쪽에 불과하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3.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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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9.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9.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회의 인상은 강렬했다. 교권 논란 와중에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30만명이 모였음에도 조그만 충돌도 없었고 떠난 자리에는 휴지 한 장 보이지 않았다. 오와 열이 반듯한 공중 사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덕분에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도 수고를 덜었다. "모든 집회를 교사 집회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교사들은 질서를 지키며 다른 사회구성원을 배려하고 폭력적이지도 않다는 이미지를 그 집회로 보여줬다. 요구사항을 애써 외칠 필요도 없다. 형식 자체가 내용이었다. 그 집회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교권 회복을 열망하는 교사들을 응원하게 됐을 것임을 짐작해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월요일 출근해 내린 "교권 확립과 교육 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에는 주말 교사들의 집회에서 받은 감동이 보인다.



여론은 교사의 편이다. 죽음으로 호소한 교사들의 고단함에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론에 힘입어 교권보호 4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유아교육법·초중등교육법)은 21일 국회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했다. 법이 시행되면 아동학대 범죄로 신고 되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되지 않는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교권침해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 국회에는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우였다면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을 때 정서적 학대 행위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추가적인 법률안도 상정돼 있다. 해외 언론은 '아동학대 면책'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사들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로써 교단이 높아지고 교육 현장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지금은 몰상식한 학부모와 영악한 학생으로부터 교사들이 부당하게 수모를 당하는 사례들이 두드러지지만 학교폭력을 겪던 충남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안에서 학교와 교사의 미온적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던 게 불과 지난 5월이다. 같은 달 전남 순천에서는 교사의 질책을 받은 중학생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며칠 전에는 서울에서 중학생(학교폭력을 당하던 상태였다)을 꾸짖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도덕 교사에게 징역형이 구형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아동을 언어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적 학대한 교사들의 사례도 잊을만하면 등장한다.



걱정되는 것은 소수의 교사 때문에 전체 교사에 대한 여론이 다시 바뀌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교사에 대한 경험이 양면적이기에 어느 쪽이든 쉽게 끌릴 준비가 돼 있다. 무서운 교사가 많던 시절의 질서를 옹호하지만, 그 당시 야만적인 폭력에 치를 떠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는 학생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교단이 붕괴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대로 교권 보호조치 때문에 일부 교사의 일탈을 제재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면 여론은 언제든 돌아설 것이다. 학교는 교육받을 권리와 교권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곳이지만 만약 두 가치가 충돌한다면 헌법에 새겨진 교육받을 권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교권'은 '교사의 권리와 권한'을 뜻하기도 하고 '교사의 권위'를 말하기도 한다. 권리나 권한은 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겠지만 권위까지 법률이 세워주진 못한다.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절대 외부에서 얹어줄 성질이 아니다.

교단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교사 집단 내부에서 권익을 지키려 노력함과 동시에 일탈행위를 하는 교사가 교단에 서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좋은 도덕이 유지되려면 좋은 법이 필요한 것처럼, 법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좋은 도덕이 필요하다"고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교권을 강화하는 법이 개정 의도대로 시행될 수 있게 지탱하는 것도 도덕이다. 여의도 집회를 봐서 우리는 알고 있다. 교사들은 이미 내부에 스스로 교권을 높일 충분한 힘을 가진 존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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