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동위원소는 자연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수명이 짧고 희귀한 입자를 뜻한다. 물질과 우주생성의 원리를 규명하거나 반도체·철강·디스플레이 등 산업용 첨단 신소재 개발에 사용된다. 인체노화 분석과 암치료법 연구에도 쓰인다. 중이온 가속기를 '꿈의 장비'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내 독자기술로 만든 라온은 지난해 10월 시범가동한 데 이어 올해 5월 시운전에도 성공하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빠르면 내년 말부터 상업적 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에 라온이 정상운영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과학기술계에선 다른 대규모 연구시설과 마찬가지로 예산이 줄어들면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전기요금 인상 등 운영비 부담이 커져서다. 실제로 지난달 전기요금 부담으로 국가데이터센터인 '글로벌 대용량실험 데이터허브센터'(GSDC)의 장비 절반가량이 가동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번 R&D 예산 구조조정이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 R&D 예산안은 법적으로 6월까지 확정돼야 한다. 하지만 올해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돌연 심의가 미뤄졌고 부랴부랴 예산안 수정에 나섰다. 타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연구비 나눠먹기, 중복투자 등 R&D 예산의 비효율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혈세를 빼먹는 부정이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하면 된다. 하지만 면밀한 검토 없이 일괄삭감을 밀어붙이는 것은 소뿔 모양을 바로잡겠다고 소를 잡는 격(矯角殺牛)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상황에서 카르텔 척결이 미래 성장동력을 꺾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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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삭감에 반발해 과학기술계가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서울대 등 9개 대학 학생회가 예산삭감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낸 데 이어 지난 5일엔 과학기술분야 10개 단체가 '국가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결성해 반발하고 나섰다.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과학자들이 정부 방침에 집단반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들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