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씨가 마주한 개농장의 모습들. 음식물 쓰레기,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 뚫려 있는 바닥. 우리나라 반려인 1300만명. 그러나 여전히 이런 현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작열하던 건 한여름 땡볕이었고, 개들이 발 딛은 달궈진 뜬장이었고, 소리치던 한 남자였다. 대변하던 건 불법 개농장 개들이었다. 힘들어보이던 생명이었다. 뚫린 바닥에 서 있느라 발바닥이 다 벌어지고, 그 아래엔 배변과 악취가 가득하고, 앞엔 음식물 쓰레기가 놓여 있는.
개식용을 종식하자고 사람들에게 외치던 이들. 함께 목소리를 높이던 박성수씨(왼쪽)./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끌려가는 개들의 '눈빛' 본 날, 잠을 못 잤다
새끼를 낳게 하고 여기서 또 고기가 되기 위해 길러진다.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8~9개월간 자란다. 그리고 도살된다. 끝없는 반복이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궁금했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 25명이 서울 양천구 목동에 모였다. 식약처 앞이었다. 성수씨도 거기에 있었다. 개식용을 끝내자고 목소릴 높였다. 몇 달씩이나 집회에 참여했으나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이걸로 바뀔까.' 회의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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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갔던 곳은 개를 사고 파는 경기도의 한 '경매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개장수들. 또 죽음을 앞둔 온갖 개들이 넘쳐났다. 그 때였다. 어떤 장면이, 성수씨 마음에 깊이 박힌 건.
서너 달에 걸쳐 집회를 이어갔다. 개 경매장 철폐를 요구했다. 관할 지자체 부시장에게 답이 왔다. "철거시키도록 최선은 다하겠다." 그로부터 8~9개월 후 개 경매장은 철거됐다. 후폭풍은 셌다. 경매장 관계자들로부터 고소만 5건을 당했다. 명예훼손, 영업방해,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였다. 무혐의도 있었으나 벌금이 나온 것도 있었다.
물 뿌리고, 전기봉으로 지지고…그래도 살아 있으면 '망치'로 때려
개들을 싣고 가던 트럭을 잡았다. 그 안에 실려 있던 개들의 모습./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몸을 아예, 좌우로도 움직일 수 없게 해놨어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개들 있잖아요. 꺼낼 때 힘이 세니까, 수고를 덜기 위해 그렇게 해놓은 거예요.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사형수도 그렇게 안 살잖아요."
개들에겐 주로 '짬밥(음식물 쓰레기)'을 먹인단다. 군부대 등에서 받아오는 거다. 파리, 모기 유충,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썩은 내가 진동하기도 했다. 아예 물 한 번 못 먹는 개들도 많다. 짬밥을 아주 묽게 만들어, 밥그릇에 짜주는 거다.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개들도 표정이 있다. 눈빛엔 많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걸 읽는 이들이 있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살기 위해 구겨진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연명한다. 그렇게 8~9개월. 그 시간이 지나면 죽인다. 도살한다. 개들에게 물을 뿌린다. 감전이 잘 되도록. 이어 전기봉으로 지진다. 그래도 움직이면 망치로 머릴 때리거나, 칼로 목을 찌른단다. 털을 태우고 내장을 빼고. 빼낸 내장을 다시 개들에게 주기도 한단다.
죽을 때가 되어서만 나올 수 있는 곳, 불법 개농장./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들리지 않는 짖음'…성수씨가 '책'을 쓴 이유
박성수씨가 가장자리에 있는 개들을 알리기 위해 쓴 책, '들리지 않는 짖음.'/사진=남형도 기자
끝이 없단 생각을 했다. 반려인구 1300만명.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음지' 얘기엔 관심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책을 쓰기로 맘 먹은 이유였다. 성수씨가 말했다.
"개농장, 이런 음지에 관심 있는 분들이 1~2%나 될까요. 무관심한 거지요. 그러니 최소한 '궁금증'이라도 갖게 하자, 그런 취지였어요. 펫샵에서 사서, 내 아이만 예뻐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분위기여서요. 도대체 어디서 왔고, 뭘 먹여 키우는지, 어떻게 죽이는지, 알게 하자는 거지요."
꺼낸 개들을 차에 싣는 박성수씨. 비로소 살기 위한 시간이 흐르는 거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한쪽에선 키우고, 한쪽에선 죽이고 먹는 역설. 그걸 끝내기 위해선 관심이 필요하기에, 책엔 개농장 문제를 포함해 알아야 할 동물권 문제가 두루 담겼다. 이와 관련해 15명을 인터뷰한 글도 담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그맨 박성광씨, 배우 이용녀씨, 김정난씨, 안정훈씨, 제주 행복이네보호소 고길자 소장, 가수 조현영씨, 유아라씨 등이 참여했다.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개들은 동네 산책 길에, 동물병원에, 아늑한 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개들은 이런 곳에 있다. 꼬물이들은 그런 현실도 모른 채 어미 젖을 빨고 있다. 어미가 바라본다. 우리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고./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말 못하는 아이들의 짖음이 들릴 거다. 이를 대신해 들어주고 목소릴 내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