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부수입만 5억원인 선생님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2023.08.2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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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최근 영국박물관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영국박물관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가이드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관람객들에게 영국박물관에 입장료가 없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훔친 유물이 많아서"라고 답한다고 한다. '찔려서' 무료 입장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실상은 다르다.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영국은 교육의 격차를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무료 입장이다. 경제력의 차이로 누군가는 '로제타석'을 보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영국박물관를 포함해 자연사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등 영국 대부분의 박물관·미술관은 무료다.



교육 정책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최근 교육계에 '사교육 카르텔' 강풍이 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사교육에 내몰린 교육 환경을 알았지만, 카르텔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사교육 시장이 '이권의 놀이터'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교육부에 설치된 신고센터에는 수백건의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가 이어졌다.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출제 경험을 가진 현직 교사로부터 문항을 구매해 교재 제작에 나섰다는 신고도 있었다. 명백한 카르텔 정황이다. 국세청까지 나서 대형 입시학원 세무조사에 나섰고, 정황은 사실로 굳어졌다.



정부가 의지를 드러내자 실체는 분명해졌다. 교육부는 영리행위에 나선 교사들의 자진신고를 받았다. 297명의 현직 교사가 학원에서 돈을 받았다고 자진신고했다. 서울 사립고의 한 수학교사는 겸직허가를 받지 않고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판매한 대가로 5년 동안 4억8000만원을 받았다고 신고했다.

사교육업체가 이 교사에게 대가를 지불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수능 출제위원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학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문제를 판 현직 교사가 수능 출제위원 출신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사회 발전의 든든한 주춧돌이 돼야 할 공교육 기능은 상실한 것이고, 입시제도 또한 망가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번 일을 "입시제도 대개혁의 출발로 삼겠다"고 했다. 이 부총리의 발언이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마침 교육부는 '2028 대입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 당초 6월 말 발표 예정이었던 2028 대입 개편안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무엇인가 많이 바꾸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교육당국은 '불편한 진실'을 오랫동안 외면했다. 윤 대통령이 2개월 전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아니면 모른척 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이권의 결과물인 '킬러 문항'은 소수의 누군가에게, 특히 경제력을 갖춘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공유됐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면 교육부의 직무유기다. 반성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사교육 이권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하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린 입시제도를 만들고,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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