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혁신' 빠진 R&D 지원금

머니투데이 김유경 부장 2023.08.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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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을 위해 수많은 R&D(연구·개발) 과제에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사실 혁신기술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저희는 지원금을 쉽게 받을 수 있어 좋지만 R&D비가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최근 만난 중소기업 대표가 조심스레 꺼낸 얘기다. 무슨 말일까.

R&D 과제의 경우 기술개발을 완료하면 그 과제는 성공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기술개발의 난이도는 상관이 없다. 이게 함정이다. KPI(핵심성과지표)를 100% 달성하지 못하면 지원금을 온전히 받는 것도, 다음 과제 신청에도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절대 실패확률이 없는 KPI로 연구과제를 신청한다는 얘기다. 대부분 R&D 과제 지원사업에 '혁신'이 있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다.



이렇게 지원금을 받기 위한 용도로 R&D된 기술들은 혁신성이 떨어져 쓸모가 없거나 상용화가 안 돼 사장되기 일쑤다. 불필요한 기술개발에도 R&D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기업의 대표는 "R&D 과제로 선정돼 기술을 개발했지만 상용화를 위해선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상용화할 여력이 없어 기술개발을 하는 것으로 끝냈다"고 했다.

국가 R&D 예산 규모는 2008년 10조원에서 2019년 20조원으로 늘었고 이후 4년 만인 2023년 30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렇게 R&D 예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작용과 비효율도 커졌다. 인건비 횡령 등의 부정사용과 연구장비가 활용되지 않는 비효율 등의 형태로 '눈먼 돈'이 많아졌다는 지적과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22일 'R&D 비효율·카르텔'을 혁파하고 R&D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침을 내놨다. 골자는 매년 저성과·낭비사업에 대한 예산점검과 R&D 사업에 대한 상대평가를 도입해 하위 20%는 구조조정 및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년도 국가 R&D 예산을 13.9% 삭감한 21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주로 '중소기업 뿌려주기식 사업'과 '단기 현안 대응'을 이유로 대폭 늘어난 사업 등을 강도 높게 구조조정해 3조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줄였다. 반면 AI(인공지능)·우주·양자·바이오 등 7대 핵심분야의 예산은 늘리고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인재양성 예산에 2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R&D 예산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따끈따끈한 대책을 보고도 여전히 찝찝한 느낌이다. 예산삭감과 깐깐한 평가로 부정사용과 눈에 띄는 비효율은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면 혁신적인 R&D 성과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실질적인 R&D 성과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중소기업 대표의 2가지 아이디어는 귀담아들어볼 만하다. 우선 과제 선정기준이다. 혁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는 측면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이 실패하면 안 되는 KPI 기준으로는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량적 평가 외에 전문가의 정성적 평가가 보완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 선정기준이다. 스타트업이 신청하는 연구과제의 경우 기술전문가가 아닌 벤처캐피탈리스트(VC)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지 여부를 떠나 VC는 이해관계자로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이 투자를 거절하거나 투자심사를 받으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 스타트업 대표는 "'내가 (과제) 심사위원이니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VC가 많다"고 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새로운 방침이 그간 지적돼온 부정사용과 비효율 개선으로 이어져 미래 먹거리를 위한 예산이 잘 사용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참에 R&D 예산이 좀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선정기준들도 마련되기를 바란다.

[광화문] '혁신' 빠진 R&D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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