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과제의 경우 기술개발을 완료하면 그 과제는 성공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기술개발의 난이도는 상관이 없다. 이게 함정이다. KPI(핵심성과지표)를 100% 달성하지 못하면 지원금을 온전히 받는 것도, 다음 과제 신청에도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절대 실패확률이 없는 KPI로 연구과제를 신청한다는 얘기다. 대부분 R&D 과제 지원사업에 '혁신'이 있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다.
국가 R&D 예산 규모는 2008년 10조원에서 2019년 20조원으로 늘었고 이후 4년 만인 2023년 30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렇게 R&D 예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작용과 비효율도 커졌다. 인건비 횡령 등의 부정사용과 연구장비가 활용되지 않는 비효율 등의 형태로 '눈먼 돈'이 많아졌다는 지적과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주로 '중소기업 뿌려주기식 사업'과 '단기 현안 대응'을 이유로 대폭 늘어난 사업 등을 강도 높게 구조조정해 3조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줄였다. 반면 AI(인공지능)·우주·양자·바이오 등 7대 핵심분야의 예산은 늘리고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인재양성 예산에 2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R&D 예산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따끈따끈한 대책을 보고도 여전히 찝찝한 느낌이다. 예산삭감과 깐깐한 평가로 부정사용과 눈에 띄는 비효율은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면 혁신적인 R&D 성과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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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R&D 성과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중소기업 대표의 2가지 아이디어는 귀담아들어볼 만하다. 우선 과제 선정기준이다. 혁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는 측면에서 볼 때 지금과 같이 실패하면 안 되는 KPI 기준으로는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량적 평가 외에 전문가의 정성적 평가가 보완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 선정기준이다. 스타트업이 신청하는 연구과제의 경우 기술전문가가 아닌 벤처캐피탈리스트(VC)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지 여부를 떠나 VC는 이해관계자로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이 투자를 거절하거나 투자심사를 받으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 스타트업 대표는 "'내가 (과제) 심사위원이니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VC가 많다"고 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새로운 방침이 그간 지적돼온 부정사용과 비효율 개선으로 이어져 미래 먹거리를 위한 예산이 잘 사용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참에 R&D 예산이 좀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선정기준들도 마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