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예루살렘의 사다리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08.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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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사진=김화진김화진 /사진=김화진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성묘교회가 있다. 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6개 기독교회의 공동성지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사흗날에 부활했다는 종교적 사건의 무대다. 1600년이 넘은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이 교회 입구 위쪽 2층에는 아치형 창이 2개 나 있다. 그런데 어느 시대 어느 시간에 찍힌 사진을 보아도 오른쪽 창 밑으로 사다리가 하나 외벽에 걸쳐 있다. 그 유명한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다. 1750년대부터 그곳에 있으니 거의 280년 동안이다. 1750년 이전에 제작된 판화에도 사다리가 보이기 때문에 그 이전부터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57년에 오토만의 오스만3세가 예루살렘의 성지를 교회별로 나누어 분배하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결정했고 그때부터 모든 교회가 일체의 물품을 이동시키지 않은 결과다. 기독교 분열상의 상징물이라고도 한다.



기독교 내부뿐 아니다. 예루살렘은 인류 신앙의 분열을 보여준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3대 종교가 모두 성지로 모시는 도시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공히 자기들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유대인들과 무슬림 모두 성지가 거기에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데 그때까지는 요르단의 통제하에 있었다. 1187년에 살라딘이 접수한 후 800년 넘게 이슬람이 지배했다. 요르단이 통제할 때는 유대인들이 성지인 통곡의 벽에 접근하지 못했다.

201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미국이 텔아비브에 있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행사를 했고 그를 비난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중 최소 60명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수백 명이 부상했다. 2020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주선으로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워싱턴협정이 체결되었다. 주로 경제개발에 관한 상호협조 내용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1승을 거두었다. 미국은 두 나라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는 내용도 협정에 넣게 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의회는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모두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수도 주장을 지지했다. 말로만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행동에 옮겨버렸고 미국이 25년간 힘들게 지켜온 분쟁의 소방수 역할에서 방화범으로 변신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비난뿐이었다. 그동안 아랍 국가들이 여러 가지로 지쳐서 이스라엘 문제에는 덜 민감해졌다. 더해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사우디를 필두로 중동 국가들은 은근히 이스라엘을 민다.

대다수 국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본다. 유엔(UN)과 유럽연합(EU)도 같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일찌감치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이 문제는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그렇기 때문에 자국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 둔다. 미국이 그 양해를 깬 것이다. 현재 미국,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소보만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동예루살렘에 이스라엘법이 적용된다고 선언했다. 1980년 예루살렘법으로 예루살렘을 국가의 수도로 선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법을 무효로 선언하고 회원국들이 모두 예루살렘에서 외교공관을 철수하도록 결의했다. 유엔 총회도 마찬가지 결의를 수 차례 채택했다. 아마도 예루살렘은 성묘교회의 사다리처럼 현재의 지위가 변함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필자의 이스라엘 친구들은 다른 걱정을 한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미래는 정치와 외교가 아니라 인구 구성이 좌우할 것 같다는 것이다.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의 수가 유대계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가 뭐라고 하든 관계없이 이스라엘 자체가 지금의 현상을 바꾸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대가족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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