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는 안 물어요" 처럼 자식 감싸는 '진상 부모'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3.07.26 05:56
글자크기

[김고금평의 열화일기]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위한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위한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사진=뉴스1


물론 개가 물지 않을 수 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가족으로 함께 살아온 세월 역시 만만치 않다면 '물지 않는 습성의 자기 애완견'에 대한 '묻지마 신뢰'가 차고 넘칠 것이다. 하지만 개는 개일 뿐, 무는 동물적 본능을 단 한 순간도 외면할 수 없다. 그게 함께 사는 이치이고 순리이자 상식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믿음은 아마 개보다 진하고 깊을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키운 어린 자식의 성장 과정과 쏟아부은 애정을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무한한 신뢰'가 샘솟는 듯하다.



부모 앞에서 재롱부리던 그 아련한 추억을 벗 삼든, 퇴근한 부모 가슴에 얼굴을 파묻던 기억을 떠올리든 뇌리 한 켠에 자리잡은 박제 이미지 앞에서 부모는 아이의 '나쁜 짓'을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식은 자식일 뿐, '악행의 주인공'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 사람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간 10대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곳에서도 부모의 돈과 권력을 앞세워 악행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면회하자,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어머니는 "엄마 아직 실망하지 않았어. 나 너 믿어. 엄마 아빠가 다 덮어줄 테니까, 너무 못된 짓만 하지마."라고 당부하고 아들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앞으로 착한 아들 할게요."



지난 24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시교육청 옆 분수공원에 마련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 24일 오후 대구 수성구 대구시교육청 옆 분수공원에 마련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
부모는 자식을 자기 품에 길러서 그런지, 다 아는 것처럼 '오해'한다. 이제껏 숱한 악행을 했어도 지금 이 순간 용서를 빌고 "착한 아들" 운운하면 눈 녹듯 사그라지는 게 부모 마음이다. 예의와 상식을 지키며 제대로 자식을 교육시키는 부모도 적지 않지만 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애정적으로 결국 자식을 감싸 안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걸 아는 영리한 아이들은 부모의 절대적 사랑을 믿고 일차적으로 교권을 우습게 보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고 이에 대한 통제를 받으면 이차적으로 부모가 나서는 식으로 상황을 만든다.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이고 친구와 교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일이 다반사다. 지금 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어디 감히~"라는 기성세대의 판에 박힌 예의는 사라진지 오래다. 급기야 초등학생 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 잇따라 교사를 폭행하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교사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제지하면 곧바로 부모의 입김이 시작된다. "교사가 소리를 질러 아이가 밤에 경기를 일으킨다" "친구들 앞에서 자기 아이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등으로 항의하는 식이다. 아이와 부모의 합동 공격으로 교권이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해도 '학생인권조례'나 '아동학대 신고' 등에 가로막혀 교사들이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폭언하고 폭행한 사실을 처음엔 놀랍게 받아들이며 고개 숙여도 결국 "아이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이에 맞춰 아이 감싸기도 시작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개어멈과 개아범들은 자신의 개가 어떤 아이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 키우는 데다 보호자를 향한 애정도 상당해 그들의 반려견은 '착한 아이'이자 '해치지 않는 아이'라는 명제가 못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한강 산책로나 길가에서 그 '착한 아이'가 아이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짖을 때, 보호자들은 늘 웃는 얼굴로 이런 논리로 무마한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로트와일러 같은 맹견은 물고 몰티즈 같은 애견은 물지 않는다는 건 '그들만의 해석'이다. 비행 청소년은 교사를 폭행하고, 우등생은 얌전할 거라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얌전한 우등생'이 0.1% 확률로 폭행에 가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부모의 아이 교육은 완성될 수 있다. 요즘 인터넷에 화제인 '진상 부모 체크리스트'라는 게 있다. 그중 '우리 개, 아니 우리 애~'로 시작하는 몇 가지 사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우리 애는 예민하지만 친절하게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 애는 순해서 다른 애들한테 치일까봐 걱정이다.
-우리 애는 고집이 세서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우리 애가 잘못했지만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면 '우리 개는 안~'와 다를 게 없다. 반려견 훈련사들은 개의 올바른 친밀감과 태도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로 한결같이 '건조하고 딱딱한 반응'을 주문한다.

인간적 관점이 아닌 동물끼리 통하는 언어와 몸짓으로 가르쳐야 '교육'이 이뤄진다는 논리다. 딱딱하게 행동하고 만지지 말고 말 걸지 말고 좋아한다고 쉽게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무시가 아니라 교시다. 그래야 아무 때나 약한 자를 향해 물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며 심지어 반려견과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최근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교권 침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별였더니, 응답자 9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49.0%로 가장 많았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무시·반항'(44.3%), '학부모의 폭언·폭행'(40.6%), '학생의 폭언·폭행'(34.6%) 등이 뒤를 이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학생의 눈물과 반성으로 시작되고, 그 시작의 시작은 학생의 폭언과 폭행이다. 이 악행의 고리는 반려견을 다루는 보호자처럼 부모의 자기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무조건 감싸 안을 것이 아니라, 딱딱한 이성의 논리로 사람이 아닌 상황을 더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착한 자식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편을 들어줄 수 없다는 냉철한 자세 말이다. '사랑하되 부족하게 키워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볼 때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