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결국 주주에 손 벌리는 바이오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2023.07.0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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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바이오 업계에서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잦다. 사채를 발행하거나 제3의 투자자를 유치하지 않고 현 주주를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살기 위해 주주로부터 돈을 걷는 셈이다.

실제 엘앤케이바이오 (9,780원 0.00%), 셀리드 (3,535원 ▼135 -3.68%), 피씨엘 (1,025원 ▼22 -2.10%), 진원생명과학 (2,340원 ▲5 +0.21%), 에스씨엠생명과학 (3,000원 ▼60 -1.96%), 클리노믹스 (1,726원 ▲106 +6.54%) 등 여러 바이오가 현재 주주배정 유상증자 절차를 밟고 있다. 증자 규모도 만만찮다. 진원생명과학의 유상증자 규모는 800억원을 넘는다. 셀리드는 증자로 400억원을 조달하는데 이는 현재 시가총액의 60%를 넘는 규모다.



최근 바이오의 잇따른 유상증자는 예고된 수순이다. 국내 증시에서 많은 바이오가 수년간 자체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비용만 투입하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자본시장을 통해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연명하는 바이오가 적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국내 여러 바이오가 채무상환 우려에 노출되는 원년이다. 바이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2020~2021년 무차별적으로 발행한 전환사채(CB)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시기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래한다. 최근 바이오의 유상증자 자금 사용 목적에 채무상환이 많은 이유다. 즉 주주들의 돈을 모아 빚 갚는 데 쓰겠단 말이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한 바이오사의 주주는 달가울리 없다. 증자 발표 뒤 대체로 주가가 급락하기 때문이다. 우리 증시에서 바이오는 종목마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길게는 2년 이상 주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증자로 주가가 또 한 번 출렁이고 증자에 참여할 주주는 추가로 돈을 더 투입해야 한다.

대규모 증자로 주주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 경영진의 책임 있는 자세는 보기 어렵다. 최근 증자를 결정한 보로노이를 제외하면 대다수 바이오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참여율이 높지 않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주주들은 어떤 마음일까.

바이오의 잇따른 유상증자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 역시 바이오에 있다. 한 예로 진원생명과학은 2020년부터 현재 진행 중인 유상증자를 합치면 시장에서 3000억원이 넘는 돈을 조달한다. 이 기간 전환사채(CB)를 두 차례 발행했고,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네 번째다. 그동안 경영진은 막대한 보수를 받았는데 적자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상장 기업이라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어려워해야 한다. 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주주에게 손을 벌려 회생의 기회를 얻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바이오라면 더 그렇다. IPO(기업공개)를 통해 공모로 자금을 조달하고 수년간 비용만 집행하며 수익 구조를 갖추는 데 실패한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바이오는 달라진 모습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무분별한 비용 집행을 줄이고 경영진도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서 매번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경영진만 배부르다면 누구의 응원도 받을 수 없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본업에 매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 그게 고통받는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우보세]결국 주주에 손 벌리는 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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