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논란봉투법'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06.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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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모두를 위한 법으로 가는 길

오는 30일 국회 부의를 앞둔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3조 개정안)'이 논란이다.

노란봉투법은 쌍용자동차 파업 후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노동자를 위해 2013년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손해배상금을 십시일반으로 넣어서 도왔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한 프레임의 이름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의미의 '노란봉투'만 있는 게 아니다. 재계에선 논란을 가득 담은 '논란봉투'도 있다고 항변한다. 사용자(교섭대상) 범위확대와 노동쟁의 행위 대상(경영행위 포함) 범위 확대 등이 개정안 봉투에 담긴 '논란'의 대상이다.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아도 근로조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의 사용자라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사용자 범위 확대 문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협력업체가 수백~수천개인 기업은 이들 모두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또 법이 개정되면 생산라인의 조정이나 조직개편 등 경영활동에 대한 것도 파업 등 노동쟁의의 대상이 된다.



불법파업시 손해배상의 경우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인한 연대책임이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한사람 한사람의 개별적 책임을 따져 입증하고 소송을 걸도록 한 조항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률상 자기책임의 원리는 이해하지만 이는 아예 손해배상 소송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처럼 논란이 심한 법안의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다고 끝까지 쟁점을 논의하고, 최대한 합일점을 맞춰나가는 게 정치다.

지금 정치는 사라지고 힘 대결만 난무한다. 야당의 본회의 직회부에 맞서 여당의 반대와 대통령실의 거부권 예고로 입법자체가 난항이 예상된다. 밀어붙이면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입법화라는 목적 달성에는 실패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결과가 뻔한데도 정치적 타협보다는 정쟁에 몰두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졸속 입법의 문제점은 법 시행 이후 드러난다. 그동안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약자를 위한 법'이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간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법 시행 후 폐해가 적지 않다.

일례로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그렇고,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나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법이 문제에 대한 근원을 찾고 그에 맞는 대책으로서 마련돼야 하는데,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임시방편으로 만드니 여기저기가 구멍이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의무적으로 전환토록 한 비정규직보호법 이후 비정규직은 2년이 되기 전에 거의 일자리를 잃고 잘린다. 노동의 유연성 문제 때문이다. 강사처우를 개선하도록 입법을 했더니 강사를 줄이고 대신 저임금 비정년 트랙의 전임교수만 채용한다. 10년 이상 동결인 대학등록금 등 대학의 재정문제 때문이다.

안전관리 책임을 최고경영자에게 물어 형사처벌을 한다고 하니 최고경영진들은 아예 자신의 직무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빼는 방법을 택한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오너 3 세는 회장인 아버지에게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할 경우 안전관리 업무에 관여한 것이 되기 때문에 향후 사고 발생시 '안전관리책임자'로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안전관리 업무에 대한 보고는 받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열심히 안전관리 지시를 내린 것이 처벌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소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법이 오히려 약자들을 더 위기로 모는 아이러니와 악순환의 연속이다. 법이 약자를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법은 그들을 포함해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룰을 바로 세워야 한다.

자신이 부자이거나 빈자이거나 상관 없이, 자신이 사업주이거나 노동자이거나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빈자일 때는 받아들이겠는데 부자일 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고, 사업주일 땐 받아들이는데 노동자일 때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룰은 대체적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정의일 경우가 많다.

모두 '무지(無知)의 베일' 뒤에서 내가 어떤 조건일 때나 동의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무릎을 맞대고 침을 튀기며 토론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각각 상대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이념을 공고히 해서는 우리 사회의 발전이 없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는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정하는 역할이다.

노란봉투법이 '논란봉투법'이나 '놀란봉투법'이라는 힐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여야와 노사가 더 시간을 갖고 심도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이해와 설득의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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