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낭만닥터 주석중의 마지막 유산

머니투데이 김명룡 바이오부장 2023.06.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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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낭만닥터 주석중의 마지막 유산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교수에 대한 전국민적인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종합병원의 의사이긴 했지만, 유명인은 아니었단 점에서 이런 관심은 이례적이다.

그는 큰 병원의 병원장 자리에 올랐거나 명성을 얻을 만한 상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환자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비통해하고 있다. 수술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인생을 바쳤던 그의 삶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울림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뒤늦게 알려진 그의 삶은 일반인이 실천하기도, 어쩌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이상욱 아산병원 교수는 "여가 생활도 하지 않고 사회적 모임에 나가지 않고 자기 생이 마감될 때까지 환자를 살리는 일에만 오로지 집중하고 살아왔다"며 "그런 거룩한 삶을 살았던 이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소천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긴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 근처에서 살고, 언제 터질지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병원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조차 경계해 여가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희생과 헌신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20년 전 주 교수로부터 심장 혈관이 막히는 협심증으로 개복 수술받았던 환자가 수백㎞를 달려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한 것은 그의 마음이 환자들에게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배우 한석규가 연기한 김사부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극 중에서 김사부는 '(환자를)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의사로서 소임을 다하는 역할이다. 어쩌면 드라마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의사의 모습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국민들이 그의 죽음에 더 안타까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극 중의 김사부, 현실의 주석중은 직업인과 사명과의 개인의 삶 사이에서 사명을 택했다.

하지만 머잖아 우린 낭만닥터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필수 의료분야, 특히 흉부외과의 붕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흉부외과 전문의는 1600명 정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의의 평균 연령이 52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흉부외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원의 50~60%를 맴돌며 계속 미달이 발생했다. 신규 전문의보다 은퇴하는 전문의가 많으니 흉부외과 의사의 수가 자연 감소할 수밖에 없단 의미다. 게다가 '전문의'를 떼어 버리고 다른 과목을 진료한다는 흉부외과 의사 비율은 20.8%(2020년 기준)였다. 이대로라면 "심장 수술을 받으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자조 섞인 전망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흉부외과뿐 아니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다른 필수 의료 분야에서도 붕괴 조짐이 일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비만 치료나 피부과 등 위험부담이 적고, 많은 수입을 올리고, 정시 출퇴근이 가능한 전공 분야로 몰리고 있다. 인기 전공을 얻기 위해 과외수업을 받는 의대생들도 있다. 일부는 재수·삼수를 해서라도 원하는 전공 분야를 택하기도 한다.

모든 의사가 주 교수처럼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순 없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사들이 왜 필수 진료과목을 기피하는지부터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수가 인상도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모든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승진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회장은 "여러분의 자녀가 힘들게 의대를 졸업하고, 흉부외과를 지원한다면 허락하겠는가?"라며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수 의료는 무조건 '살려야 한다'. 이번 기회에 주석중 교수의 숭고한 마음이 필수 의료 대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필수 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주 교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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