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 밟는 '구두닦이 약국 주인'…"돈이 아닌 사람을 법시다"

머니투데이 대담=김명룡 바이오부장, 정리=안정준 기자 2023.06.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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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 초대석]김승호 보령 회장③

김승호 보령 회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보령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후 회장실 앞에 전시된 약장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가 한국전쟁 후 개업한 보령약국 시절 사용한 약장이다./사진=김휘선 기자김승호 보령 회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보령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후 회장실 앞에 전시된 약장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가 한국전쟁 후 개업한 보령약국 시절 사용한 약장이다./사진=김휘선 기자


김승호 보령 회장은 제약업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경영인'으로 통한다. 보령약국 문을 연 1957년부터 약을 구하러 서울 시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보령의 성실과 신뢰를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

경영인의 입장에서 적정 가격을 지키는 동시에 다양한 약품을 갖추는 정책, 즉 '구색'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서였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약품의 수가 많지 않았고 외화가 귀해 해외에서 약품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은 전후시절이었다. 아무리 적당한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려 해도 고객이 원하는 약품이 없으면 허사였다. 결국 직접 페달을 밟는게 최선이었다.



가장 답답한 것은 몸이 아파 약을 구하러 왔는데, 그 약을 갖추지 못했을 때였다고 한다. 김 회장은 "바로 그 순간이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 했던 때"라며 "당연히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계절에 관계없이 온 몸에 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보령약국이 도매상으로 커지면서부턴 그가 직접 페달을 밟진 않았다. 대신 약국 앞엔 하루종일 자전거를 세워놓고 배달 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른바 보령의 '자전거 부대'였다. 김 회장은 "환자가 약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보령 역사의 기본 정신이었다"며 "저 역시 여전히 '자전거 부대'의 부대원"이라고 말했다. 고객들에게 보령은 '어떻게든 약을 구해다 주는 곳'이라는 신뢰의 대명사가 됐다.



김 회장은 "부끄럽지만 저는 구두닦이조차 마다하지 않은 약국 주인이었다"고 말했다. 보령약국 시절, 고되고 거친 일을 하다가 구두가 흙투성이가 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따로 구두 닦을 시간도 돈도 없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구두닦이의 마음으로 약국 문을 나서는 손님들을 문 밖까지 따라나가 배웅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려고 했냐며 혀를 찰 분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해서 제가 벌려고 한 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고객을 위해 페달을 밟고 구두를 닦는 성실과 신뢰의 경영은 마케팅 강의에도 활용됐다. '현대마케팅원론'의 저자인 고(故) 김동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김 회장의 회고록 '기억이 길이되다'의 축하글에서 "김 회장은 판매 전(前) 판매활동에 '정직과 성실성에 입각한 신뢰구축 활동이 포함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게 주었다"며 "그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Trust-building activities based on honesty and sincerity'라는 주제로 마케팅 강의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약력
△1932년 1월 충남 보령 출생△1950년 학병 입대△1957년 5월 육군 1201 건설공병단 중위 예편△1957년 10월 보령약국 창업△1963년 11월 보령제약 창립 △1967년 6월 용각산 발매△1975년 7월 겔포스 발매△1991년 한국제약협회 회장 취임△2010년 9월 국산 15호 신약 카나브 허가 △201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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