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준환 증권부장
코로나19로 끊겼던 정책들도 제자리를 찾는 중인데 특히 ESG(환경, 사회적책임, 투명한 지배구조)의 움직임이 빠르다. ESG 활동은 2020년 초반까지 무척 활발하게 진행됐으나 코로나 시국으로 단절기를 맞은데 더해 역행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ESG 예산집행을 미루고 보류했다. ESG가 마뜩잖던 이들이 목소리를 낸 것도 이 시기다.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면서 안티ESG는 반짝유행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DRLL은 지난해 4분기 1억8800만달러의 자금이 유입됐으나 올해 1분기에는 6900만달러로 유입규모가 대폭 둔화됐고 ORFN은 충분한 투자자산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청산을 신청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펀드 정보업체 모닝스타는 미국 내 26개의 안티 ESG 펀드 총 자산이 올해 1분기말 약 20억달러로 2022년 3분기 기록한 정점(40억달러)의 절반까지 줄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앞으로 ESG가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다. 지금까지 ESG는 우수기업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 성과가 미흡한 기업을 징계하는 채찍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한 글로벌 신용평가업체 임원은 "KS(한국산업표준) 마크처럼 ESG 인증마크가 없는 기업의 제품은 팔지 못하는 상황이 가능할 것"이라며 "ESG 등급이 낮은 경우는 자금조달이 어렵거나 이자를 많이 물게되는 등 실질적인 불이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이달 말 국제표준 ESG 공시 기준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SG 공시기준이 마련된다는 뜻은 이런 패널티 적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장 올해부터 독일은 제품 전 주기에 걸쳐 인권·환경 침해 여부를 실사하도록 하는 '공급망 실사 의무화법'을 시행하고 유럽연합(EU)은 역내 뿐 아니라 역외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 지침'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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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ESG 제도화를 재촉하는 배경이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에는 모든 코스피 기업이 대상에 포함된다. ESG는 기업에 큰 부담이다. 그러나 지금의 ESG는 선택이나 고려의 대상을 넘어 생존의 전제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 산업과 경제구조의 큰 변화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여유가 많지 않다. 다음 세대들이 지금 우리의 선택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 지 진중하게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