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흔들렸지만…달러가 80년 '기축통화'인 이유는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3.06.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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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화폐도 'G2' 시대 올까②

편집자주 팬데믹 시기 강세를 띠던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중에,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탈'달러 움직임이 선명하다. 기축통화라는 달러는 과연 자리를 내줄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통화의 중심은 달러다. 국제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축통화다.

기축통화는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건이 있다. 쓰기 편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보유하고 싶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외환시장이나 자본 시장에서 통제 없이 다른 통화로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하고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불황 때 재산 가치를 지켜주는 안전자산의 속성을 가지면서도 전 세계가 쓰기 때문에 유통량이 많아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 규모가 크고 나라 밖으로 통화가 계속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통화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야 하므로 국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강대국 통화가 기축통화였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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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는 80년 가까이 기축통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달러가 공식적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오른 건 1944년 브레턴우즈 회담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가 확실해질 무렵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전후 새로운 국제 통화질서를 논의했다.

당시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 각국 통화는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전쟁 전까지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미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패권국가로 자리 잡았고 경제는 전쟁 특수를 누렸다.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 금의 70%를 미국이 갖고 있을 정도였다.



이때 미국은 달러로 교역을 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 공급할 테니 믿고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금 1온스당 35달러로 태환을 보장했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에 자국 통화 환율을 고정하기로 했다. 압도적 금 보유량을 바탕으로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에 오르게 된 순간이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자유무역 질서와 전후 미국 주도의 글로벌 경제를 출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달러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을 위해 미국이 달러를 대량 찍어내면서 달러 가치가 추락한 게 대표적이다. 불안해진 각국은 갖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위해 몰려들었고 결국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료와 함께 변동 환율제로의 전환을 알린 '닉슨 쇼크'였다. 여기에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를 무기화하며 원유 가격을 2배나 올린 '오일쇼크'를 계기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달러 투매는 더 심화했다.

그런데도 달러는 기축통화 자리를 잃지 않았다. 1974년 미국이 OPEC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안보를 보장하는 대가로 사우디가 모든 석유 대금 결제를 달러로 하는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가 시작되면서다. 이는 석유를 거래하는 나라는 무조건 달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준비자산으로서 달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달러는 기사회생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최근 다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쑥대밭이 되면서 달러 패권에 대한 의구심과 반발이 커진 가운데 세계 경제의 양강(G2)으로 떠오른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나서면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도 위안화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 했다. 미국은 당초 달러의 힘을 빌려 자국의 가치에 반하는 나라에 제재를 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를 SWIFT(국제은행 간 통신 협정)에서 배제하는 제재를 가한 건 되레 위안화 거래를 늘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최근 사우디와 중국의 밀착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사우디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석유와 가스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겠다며 페트로 달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만 아직 위안화를 포함해 어떤 통화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면 그것은 미국이 더는 존경받고 강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한 달러 역시 기축통화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난 50년(닉슨 쇼크 이후) 동안 이어진 달러 독주를 둘러싼 회의론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중 패권전쟁과 함께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안화의 도전 역시 계속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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