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시장 뛰어든 '1위' 현대엘리베이터...中企, 규탄 서명받는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3.06.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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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지위로 부품시장 진출...시장 교란해 독점할것"
산자부, 중기부 등 제출 검토...6월 중 기자회견
현대엘리베이터 "중소 완제품사 요청에 진출...불안한 중국산 공급망서 벗어날것"

완제품 시장 1위 현대엘리베이터가 부품 시장까지 진출하자 중소 부품 기업들이 규탄하는 진정서를 모으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가뜩이나 값싼 중국산에 시장을 뺏겼고 법의 보호로 명맥을 유지하는데 현대엘리베이터가 뛰어들면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 우려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공업협동조합) 등 중소 엘리베이터 단체 세곳은 지난달 말부터 회원사들에 현대엘리베이터를 규탄하는 진정서를 보내 동의 서명을 받고 있다. 공업협동조합은 부품, 완제품 제조사 130여곳이 모였는데 이날까지 80여곳이 진정서에 동의했다.



단체들은 약 600자 진정서에 "현대엘리베이터는 중소기업과 상생 발전해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부품 사업에 진출해 중소기업들 15% 시장을 빼앗아 가려 한다"며 "기술과 자본 등 우월한 지위에 있는 현대가 부품사업도 하면 중소기업들이 고소하고 현대의 독과점에 중소기업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단체들은 "관계 당국의 필요한 조처를 요청한다"고 했다. 단체들은 서명받은 진정서를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기관 중 어디에 보낼지 검토 중이다. 이달 중 현대엘리베이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계획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스마트 캠퍼스./사진=머니투데이DB.현대엘리베이터 충주 스마트 캠퍼스./사진=머니투데이DB.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달부터 일부 중소 엘리베이터 완제품사에 '제어반(Control Panel)'을 공급하고 있다. 제어반은 '엘리베이터의 두뇌'라 불리는데 층수를 누르고 문을 여닫는 등 탑승자 명령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는 장치다.

오티스, 티케이, 미쓰비시 등 대형 완제품사들은 제어반을 자체 조달한다. 중소 완제품사 중 일부만 제어반을 국내 부품사들에서 납품받는데 한해 새로 설치되는 엘리베이터는 약 4만5000대이고, 이중 중소 완제품사의 점유율은 15% 수준이다. 제어반은 평균적으로 본체가 350만원, 그외 케이블과 스위치 등이 합쳐 400만원이라 중소 완제품사에 공급되는 제어반 시장은 230억~500억 수준이다.

해당 시장에 들어와 있는 중소 부품사는 20곳이 넘는다. 이중 5~6곳만 한해 수억 매출을 내며 안정적인 영업을 하고 나머지는 적자도 자주 내는 영세 회사들이다. 과거에 부품사가 더 많았는데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며 시장을 점차 뺏겼다.


현대엘리베이터 제어반은 중소기업보다 가격이 10%가량 저렴하다. 엘리베이터는 건물마다 '맞춤형'으로 들어가야 하고, 제어반은 제품마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새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중소 완제품사를 위해 인증도 대신 받아준다. 인증비는 제어반 하나당 약 200만원 수준이다.

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부품 시장 진출이 "저가 시장 교란"이라며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면 제어반 시장은 현대가 독점하고 결과적으로 가격 인상에 취약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중소 완제품사 요청에 진출...불안한 중국 공급망 벗어날 것"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업에 진출한 게 중소 완제품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COVID-19) 전까지 적지 않은 중소 완제품사들은 중국에서 제어반 완제품 또는 부품을 수입해 썼다.

코로나19 때문에 물류가 중단되자 완제품사들은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일부는 현대엘리베이터에 제어반 생산을 의뢰했다. 국내에서 제어반 완제품을 생산할 역량을 갖춘 곳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일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당시 중소 완제품사들이 6개월 이상 생산 지연을 겪었다"고 했다.

중소 부품사들과 달리 현대엘리베이터는 제어반을 대량 납품해 규모의 경제가 성립한다. 제어반 핵심 부품인 반도체 가격 등락에 중소 부품사들보다 영향을 적게 받고 결과적으로 중소 완제품사들에 제어반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

제어반을 수백, 수천개씩 납품하니 수천만원 인증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중소 완제품사에게는 큰 부담일 테니 1년 정도 검토한 끝에 상생 차원에 인증을 대신 받기로 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제어반 시장을 독점하고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기존에도 중소 완제품사들은 중국산 제어반을 수입해다 썼다"며 "시장 독점이 아닐뿐더러 불안정한 중국산 공급망에서 완제품사들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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