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소부장, 메타버스, 엔데믹, 에크모 등 우리는 전문용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자, 엔지니어, 의사가 사용하는 용어는 대부분 영어, 독일어 등 원어를 음차한 것이거나 한자어다. 가령 입자성질 관련 용어 중 반도체에서 전자와 양공이 결합해 만든 준입자는 엑시톤(exciton), 전하를 운반하는 운반체는 캐리어(carrier)라고 한다. 그런데 엑시톤, 캐리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주변에 몇이나 될까. 컴퓨터 디스플레이 장치나 TV에 쓰이는 오엘이디(OLED), 즉 유기발광다이오드는 빛을 내는 층이 전류에 반응해 빛을 발산하는 유기화합물의 필름으로 이뤄진 박막발광다이오드를 말한다. 가전코너에서 자주 접하지만 용어 자체도 어렵거니와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대한화학회도 1952년부터 '화학술어 제정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고 중요한 용어를 모아 화학백과를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2006년 화학용어 새 표기법을 KS 규격으로 제정·시행하면서 독일·일본식 용어를 미국식으로 변경했다. 예컨대 게르마늄은 저마늄, 요오드는 아이오딘, 메탄은 메테인으로 표준용어를 바꿨다. 그런데 표준용어가 독일식이건 미국식이건 대중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과학용어를 개정한 후 용어 사용에 따라 세대를 구분하는 신종 판독법도 등장했다. 부탄이라 하면 구세대, 뷰테인이라 하면 요즘 세대, 아밀라아제라고 하면 구세대, 아밀레이스라고 하면 요즘 세대로 구분하는 등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판별법이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대중을 왕따시키고 관심을 잃게 한다. 전문용어의 범람으로 대중과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현행법도 분명히 인지한다. 국어기본법 제17조에는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전문용어의 대중화 정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는 각 당 후보에게 쉬운 전문용어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라고 요구하며 대통령 직속 '전문용어 총괄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과학기술이 중요해질수록 과학기술이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고 대중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만 한다. 전문용어 대중화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