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대중을 왕따시키는 과학기술 전문용어

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3.06.1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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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이나 공공장소에는 자동심장충격기(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AED)가 비치돼 있다. 심장 기능이 정지되거나 호흡이 멈췄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 의료기기다. 예전에는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로 표시돼 있었다. 심장에 충격을 줘 심실세동을 제거하는 기구란 뜻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라 제세동기 대신 심장충격기로 바꿨다. 우리 일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고 이중에는 과학기술 관련 용어가 많다. 이런 전문용어는 대중이 과학기술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소부장, 메타버스, 엔데믹, 에크모 등 우리는 전문용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자, 엔지니어, 의사가 사용하는 용어는 대부분 영어, 독일어 등 원어를 음차한 것이거나 한자어다. 가령 입자성질 관련 용어 중 반도체에서 전자와 양공이 결합해 만든 준입자는 엑시톤(exciton), 전하를 운반하는 운반체는 캐리어(carrier)라고 한다. 그런데 엑시톤, 캐리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주변에 몇이나 될까. 컴퓨터 디스플레이 장치나 TV에 쓰이는 오엘이디(OLED), 즉 유기발광다이오드는 빛을 내는 층이 전류에 반응해 빛을 발산하는 유기화합물의 필름으로 이뤄진 박막발광다이오드를 말한다. 가전코너에서 자주 접하지만 용어 자체도 어렵거니와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학용어도 난해하다. 의사들은 영어로 처방전을 작성하고 한자어로 된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어려운 용어가 많다 보니 대한의사협회는 수십 년에 걸쳐 한자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노력을 해왔다. 가령 구순염은 입술염으로, 안검은 눈꺼풀로, 소양증은 가려움 등으로 순화했다. 요즘은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는데 쉬운 우리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려는 것은 대중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화학회도 1952년부터 '화학술어 제정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고 중요한 용어를 모아 화학백과를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2006년 화학용어 새 표기법을 KS 규격으로 제정·시행하면서 독일·일본식 용어를 미국식으로 변경했다. 예컨대 게르마늄은 저마늄, 요오드는 아이오딘, 메탄은 메테인으로 표준용어를 바꿨다. 그런데 표준용어가 독일식이건 미국식이건 대중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과학용어를 개정한 후 용어 사용에 따라 세대를 구분하는 신종 판독법도 등장했다. 부탄이라 하면 구세대, 뷰테인이라 하면 요즘 세대, 아밀라아제라고 하면 구세대, 아밀레이스라고 하면 요즘 세대로 구분하는 등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판별법이다.



필자는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자율주행차 융복합 미래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분야도 전문용어가 많아 회의 때마다 전문용어 대중화의 절실함을 느끼곤 한다. 운전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주행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은 ADAS라 하고 전방충돌방지 보조기능은 FCA라고 하는데 부연설명 없이 영어약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대중을 왕따시키고 관심을 잃게 한다. 전문용어의 범람으로 대중과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현행법도 분명히 인지한다. 국어기본법 제17조에는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전문용어의 대중화 정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는 각 당 후보에게 쉬운 전문용어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라고 요구하며 대통령 직속 '전문용어 총괄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과학기술이 중요해질수록 과학기술이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고 대중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만 한다. 전문용어 대중화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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