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 19일 오전 10시 19분, 대한의사협회가 홍보팀을 통해 각 언론사에 배포한 '5개 단체 입장문'이 화근이었다. 당시 입장문은 '정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에 대한 의약 5개 단체 입장문'이라는 제목과 함께 "국민 건강에 밀접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으로 작성됐다.
그런데 1시간여 후인 11시 48분,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병원협회'를 뺀 4개 단체의 이름으로 입장문을 다시 배포했다. 메일엔 "기 배포된 입장문의 참여 단체가 변동돼 재배포합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오후 3시 18분, 이번엔 한의사 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에서 "비대면 진료 관련 공동 성명서에 대한한의사협회의 명의를 도용한 양의사협회는 즉각 사죄하고 관계자를 문책하라"며 성명서를 냈다.
입장문에 이름을 올린 단체가 배포 5시간 만에 다섯 군데에서 세 군데로 줄어든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22일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각 단체의 임원 단체 대화방에서 (의사협회 측이) 입장문 초안을 올렸는데 임원의 답변이 없거나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명서를 배포한 것"이라며 "절차상의 하자이자 미스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부회장은 "병원협회에서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해 이들 단체와 공식적인 협의를 했거나, 공동 입장문을 내기로 결정한 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김형석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단체 대화방에서 한의사협회는 입장문 초안에 대해 일부는 찬성했지만 일부 문구는 수정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수정 요청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별 최종 동의 없이 입장문이 배포됐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한의사협회는 의사협회 측에서 일방적으로 배포한 것을 확인한 후 한의사협회 명의를 빼달라고 요청했으며 "알겠다"고 회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의협 측에서 "곤란하다"며 시간을 계속 지체해 성명서를 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정부의 최종 제안이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라 임원 간 의견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그런 상황에서 해당 입장문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입장으로 치중돼있었고, 의사협회 입장 위주로 무게가 실려 있어 해당 부분 삭제를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은 채 배포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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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에서 19일 오전 배포한 입장문 일부. 5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사진=입장문 일부 캡처.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에 대해 병원 입장에선 제한적으로 인정한다"며 "대면 진료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 등이 비대면 진료를 통해서라도 의료에 접근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단, 초진이 아닌 재진 중심으로 병원도 일정 부분 비대면 진료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형석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정부의 비대면 시범사업에 대한 한의사협회의 기본 기조는 정부의 최종 제안을 보고 난 후에, 우려스러운 점을 피력해 정책에 반영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번 성명을 배포한 대한의사협회 홍보팀 관계자는 "각 단체 임원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은 내용이라, 이번 입장문에서 특정 단체가 빠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잘라 말했다. 의사협회는 한의사협회가 항의 성명을 낸 이후 현재까지 3개 단체의 이름으로 새로 작성한 입장문을 다시 배포하지는 않았다.
한편 지난 17일 당정협의회를 거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야간(휴일) 및 감염병 확진자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병원급 비대면 진료 재진 허용 등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지난 19일 배포된 입장문에서는 소아·청소년의 비대면 진료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입장문에선 "소아·청소년은 표현이 서투르고 그 증상이 비전형적인 환자군의 특성상 반드시 환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한 대면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 이 입장문에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전제 조건으로 6가지를 내걸었다. 이는 ▶소아청소년과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초진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대상자{섬, 도서벽지, 거동 불편자(등록 장애인), 감염병 확진자}의 구체적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는 것 ▶병원급 비대면 진료는 기존의 합의된 원칙에 따라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 ▶비대면 진료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 ▶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비급여 의약품 처방과 관련된 비대면 진료가 오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