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디바이스와 앱이 취향과 경험을 만든다

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3.05.1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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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고 다양한 앱을 활용한다. 산업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이행은 단지 편리함의 진화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일하고 공부하고 소통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고 시공간 개념 또한 다르다.

재미 삼아 '챗GPT'에 산업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차이점 3가지를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나름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첫째는 생산방식의 변화. 산업 시대는 물리적 자본, 에너지에 의존하는 대량생산이었고 디지털 시대는 기술이나 데이터에 기반을 둔 지식 및 서비스 산업이 확산하고 있다. 둘째는 소통과 협업방식의 변화. 정보전달과 공유에 시간과 거리의 제약이 있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발전으로 실시간으로 글로벌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협업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셋째는 고용구조와 역량요구의 변화다. 산업 시대에는 물리적 노동력과 숙련기술에 의존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다양한 전문기술 능력이 요구되며 일자리 대부분이 서비스, 지식, 창의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에는 육체노동이 많았고 머리 쓰는 인지노동도 직접 계산하고 사전을 찾아 번역하고 일일이 손으로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웬만한 작업은 자동화됐고 컴퓨터와 SW의 도움으로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정성스레 손편지를 쓰고 침 발라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받을 사람을 떠올리는 낭만은 디지털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다. e메일이 편지를 대체하고 즉흥적인 실시간 메신저도 많이 사용한다. 옛날에는 멀리서 실시간으로 음성을 들으며 통화할 수 있는 유선전화도 신기하기만 했는데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지금은 유선전화도 골동품이 됐다. 물리 세상과 다른 사이버 공간과 메타버스도 어느새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그것은 인간적 감성에 기반해 느낄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낭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라며 아재 감성에 젖어 추억하면서 지나간 걸 아쉬워하기보다는 디지털기술이 우리 감각과 경험을 확장해주고 새로운 삶과 문화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 대한 경이로움과 기대감이 먼저다.



일찍이 1930년대에 독일 평론가 발터 베냐민은 사진과 영화라는 미디어기술에 주목하면서 기술복제 가능성은 예술작품을 제의로부터 해방하고 예술작업 방식이나 향유 방식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가령 창문 밖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스튜디오 안에서 발판 뛰는 동작으로 촬영할 수 있고 연속도주 장면은 한 번 찍고 몇 주 뒤 다시 촬영할 수 있는데 이런 영화기술이야말로 혁명적 가능성을 가진 도구라는 것이다. 베냐민이 경이롭다고 생각한 영화기술도 디지털 시대에는 박물관의 유물 같은 낡은 기술이 돼버렸다. 디지털 복제기술은 더 강력하고 완벽하다. 컴퓨터그래픽과 인공지능이 만들어주는 가상의 이미지들은 우리를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디지털기술이 가져다주는 건 자연인인 인간이 느끼기 어려운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고 감각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제한적인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주는 증강현실(XR)이며 더 생생한 경험을 가능케 해주는 마법 같은 과학이다. 편리한 앱 덕분에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코딩을 잘 몰라도 노코드, 로코드앱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디지털기기, 어떤 앱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사용하는 디바이스와 앱이 그 사람의 취향과 경험을 만들어준다.

19세기 산업 시대의 '맛의 생리학'(미식예찬) 저자인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뭘 먹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말했다. 21세기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당신이 어떤 디지털기기와 앱을 사용하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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