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이차전지와 중국의 산업정책

머니투데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3.05.0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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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위원최준영 위원


1990년대 이후 국가의 산업정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곤 했다. 시장 영향력이 확대되고 세계적으로 형성된 밸류체인에 의해 움직이는 산업의 흐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특정 기업 육성이나 지원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다시 산업정책의 시대가 펼쳐졌다. 당초 무역 불균형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첨단제조업 육성을 둘러싼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 핵심에는 이차전지가 존재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및 전기자동차 확대에서 이차전지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시장에서 중국의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중국 업체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0%를 넘어서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의 점유율은 20% 수준에 머무른다. 상위 20개 업체 가운데 15개 업체가 중국 기업이고 매출액 증가가 100% 이상인 12개 업체 가운데 11개 업체가 중국 기업이다. 태양광패널에 이어 이차전지 분야에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중국의 산업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중국은 연구·개발, 생산, 재활용 및 장비·소재 등 배터리와 관련된 4가지 영역 모두에서 완결된 배터리 산업시스템을 형성했다. 공정 및 핵심장비에서도 90% 가까운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이러한 중국 이차전지의 급속한 성장은 중국 산업정책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기존 추격형 전략에서 탈피해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는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을 201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자국의 환경문제 해결과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국제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이중탄소 정책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산업고도화와 첨단화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이후 축적한 자국 기업들의 생산공정에서 노하우와 경쟁력을 토대로 새롭게 성장을 시작한 분야에서의 정책적 수요창출과 더불어 압도적인 규모의 투자와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패턴을 반복한다. 태양광패널에서 시작된 이러한 산업정책은 이차전지에서 다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현재까지 성과에 취하지 않고 미래의 변화와 경쟁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2030년을 전후해 전고체전지 및 리튬·황전지 등 차세대 전지들이 대규모로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 이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와 인력확보에 꾸준히 노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 시작한 리튬이온 이차전지 시장의 잠재성을 파악하고 발빠른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지만 이러한 선제적 투자의 이점은 점차 소멸된다. 이차전지의 핵심인 전기화학 분야의 전공자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원료부문에서 독자적 공급망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가 기술적 우위에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다가올 공급과잉 상황에 대응하며 그 이후를 모색할 수 있는 신산업정책의 수립과 일관성 있는 집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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