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실내골프장. 안내데스크에 레슨비 명목으로 결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수증 뭉텅이가 놓여 있다. 이곳은 주가조작 일당의 창구로 활용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사진=김창현 기자.
설립·폐업 반복한 라덕연… 수년간 '미등록 투자일임' 펼쳤나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가 운영했던 '호안스탁' 홈페이지.
라 대표는 '호안스탁'이라는 명칭을 내세운 홈페이지를 열고 주식과 선물·옵션 투자 방송 사업을 펼쳤다. 2019년 3월에는 인천에서 자산주 투자와 관련한 오프라인 세미나를 열었다. 이때부터 투자자들의 주식계좌를 맡아 대리투자하는 미등록 투자일임 행위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금융위 공고.
2020년 3월 설립된 R사는 같은 해 금융위원회에 투자자문업 등록을 마친다. R사는 2022년 7월 당시 대표이사였던 라 대표에 의해 청산된다. 라 대표는 2021년 11월에는 경영컨설팅업체인 E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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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대표는 투자자 모집과 종목·투자전략 설계, 대리투자 등 총괄 설계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주변 인물들이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로 라 대표를 지목한다. 라 대표는 미등록 투자일임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했으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통정거래는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라 대표와 프로골퍼 A씨, 최측근 인사 B씨 등은 실내골프장, 케이블채널 운영사, 고급 바(BAR), 승마·리조트업체, 음식점 등 수십 곳을 인수 또는 설립해 투자자 모집과 수수료 편취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단순한 시세조종을 넘어 조직적인 투자사기 사건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라 대표는 주가폭락의 책임 역시 주식을 판 해당 종목의 오너들에게 돌렸다. 라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은 일임 매매에 대한 건 인정하다"며 "통정거래가 아닌 건 검찰에서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가조작 아니냐고 누가 나한테 물어볼 수 있다. 전 가치주를 산 것"이라며 "김익래 회장이 상속세 줄이자고, 공매도 때린 것에 대한 손실을 줄이자고 미친 짓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락 전 주식 판 김익래·김영민 회장도 수사선상… 석연찮은 매도 시점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이사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사 CEO와의 시장현안 소통회의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스1.
주가조작 의심 일당이 2020년부터 관리한 종목들이기 때문에 특정 세력에 의한 의도적인 폭락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라 대표 일당을 통한 주가폭락 피해 규모만 1000여명, 약 1조원에 달한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앞서 검찰은 라 대표와 프로 골퍼 A씨 등 10여명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A씨는 투자자 모집 총책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폭락 직전 대량의 주식을 매각한 오너들과의 연관성도 수사 대상이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지난달 20일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주를 주당 4만3245원에 처분해 605억원을 확보했다.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3일 앞선 17일 서울가스 주식 10만주를 45만6950원에 처분했다. 이번 매각으로 457억원을 손에 넣었다. 김영민 회장이 주식을 판 건 2010년 1월 이후 13년 만이다. 김익래 회장과 김영민 회장의 주식 매각 모두 블록딜(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이뤄졌다.
두 회사 모두 오너의 주식 처분 직후 폭락 사태가 벌어진 건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이다. 주가조작 일당과 관련성, 의도적인 폭락 유도 등 의혹들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다우데이타와 서울가스 모두 오너의 대규모 주식 처분이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