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리걸테크 산업, 직역단체에 가로막힌 혁신.. 해외 사례 해법될까

머니투데이 허남이 기자 2023.04.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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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리걸테크 업계는 합법성 논쟁으로 인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변호사협회와의 긴 싸움 끝에 직원을 50% 감축하였다. 며칠 후 공정위가 로톡 탈퇴를 강요한 변호사협회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며 리걸테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변협은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사법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표 리걸테크 회사 리걸줌 나스닥 상장 사진/사진제공=리걸줌미국 대표 리걸테크 회사 리걸줌 나스닥 상장 사진/사진제공=리걸줌


변호사협회와 혁신기업 간의 갈등은 리걸테크 서비스가 정착된 미국에서도 발생했던 문제다. 이 때 반발을 극복하고 성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업이 리걸줌(LegalZoom)이다. 서비스 운영 기간 동안 20건이 넘는 소송을 겪으면서도 2021년 시가총액 75억 달러(한화 약 9조 원)에 나스닥에 상장하는데 성공했다.



고객가치 혁신으로 전문가 집단 반발 극복한 리걸줌
미국의 전미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2000년도부터 온라인 법률 서비스를 '무단 법률 행위'로 규정하고자 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가 법률시장 내 공정거래를 저해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무산되었지만, 법률 산업을 혁신하려는 리걸테크 기업에 대한 협회의 경계는 계속되었다.



이듬해 설립된 리걸줌은 미국 리걸테크 산업의 선구자로서 창립 초기부터 '법률 서비스의 민주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리걸줌의 사업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법인 설립과 계약서 작성을 지원하는 문서 작성 서비스와 전화 상담과 변호사 선임을 지원하는 법률 자문 서비스이다. 미국의 소득 상위 1% 계층은 대형 로펌을 고용하고, 소득 하위 15% 계층은 정부나 비영리단체의 지원을 받는다면, 리걸줌은 중간에 있는 84%를 위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리걸줌이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자 미국 전역에 있는 각 주(state)별 변호사협회가 크게 반발했다. 특히 노스캐롤라이나주 변호사협회는 리걸줌이 법률 행위를 무단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영업정지 명령을 발송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리걸줌은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온라인 법률 서비스의 합법성을 인정하며 리걸줌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리걸줌은 8년 간의 갈등 끝에 미국 변호사협회로부터 합법 서비스로 인정받았다.

그림자 규제 걷고 제도권으로 포섭해야
리걸줌에서 15년 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한 서현직(John Suh) 대표는 국민들의 사법접근권을 증진하려면 법률 산업이 주도적으로 혁신을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리걸테크 선진국인 미국, 일본 등은 명확한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기존 법질서와 플랫폼 간의 갈등을 극복했다.


전미변호사협회 '변호사 직무에 관한 모범규칙'에 따르면 미국 변호사는 직접적인 알선에 대해 대가를 지급할 수 없지만, 광고 매체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미국 의뢰인들은 변호사 선임 전 리걸줌 등의 법률 플랫폼에서 변호사에 대한 사전정보를 탐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변호사연합회도 '변호사 정보제공 웹사이트의 게재에 관한 지침'을 통해 법률 플랫폼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대신 서비스 이용료·광고 방식 등을 별도로 규제함으로써, 규정 위반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양국의 리걸테크 산업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리걸줌이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일본에서는 '벤고시닷컴'이 일본거래소에 상장했다.

규제 혁신을 통한 선순환 구조
미국 변호사협회들의 초기 우려와는 달리, 현재 리걸줌에 등록된 1,300여 명의 변호사들은 효율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마케팅에 투입하던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온전히 법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뢰인의 만족도 또한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리걸줌에서 상담이 61만여 건 이루어졌는데 의뢰인의 평균 서비스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미국 법조 서비스 매출의 연평균 성장률은 2.6%였는데, 온라인 법률 서비스 시장은 연평균 8.4%씩 성장하면서 전체 법률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규제혁신이 전체 법률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로앤컴퍼니, 로앤굿, 엘박스 등 1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리걸테크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 인당 매출액이 10년째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국내 법률 시장이 리걸테크를 통해 혁신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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