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건강한 '유아인'을 위하여

머니투데이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3.04.0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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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교수임대근 교수


배우 유아인이 마약투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를 아끼는 대중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유아인은 20년 전 광고모델로 데뷔한 뒤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했다. 풋풋한 소년, 저돌적인 반항아, 피눈물 없는 악한, 외롭고 불안한 왕자 등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면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인정받았다. 영화 '버닝'에서는 미스터리한 청년을 연기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배우' 가운데 하나로 그를 선정했다. 유아인은 한국영화의 훌륭한 자산이자 기대되는 미래였다.

대중의 우려와 비판은 그가 규범을 벗어나는 행위를 했다는 판단에서 비롯한다. 이때 규범은 물론 제도·규범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현행법을 위반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제도·규범의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할 법률 다툼이 시작된 시점에 이른바 '피의 사실'이 공표된 것이다.



"저의 일탈행위들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 속에서 잘못된 늪에 빠져 있었다"는 유아인의 사과를 보면 제도·규범을 위반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듯하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도·규범의 일탈 여부는 법원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유아인은 '스튜디오콘크리트'를 세운 예술감독, 여러 디자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패션모델, 직접 시를 쓰는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SNS를 통해 거침없는 사회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정치적 이슈에도 둔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설에 오른 적도 적지 않지만 대중은 오히려 연기라는 좁은 '직업'의 세계에 갇히지 않는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떤 개인이 직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2가지 자격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직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힘, 즉 직무역량이다. 다른 하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윤리적 태도, 즉 직업윤리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의 직업노동을 이론적으로 설파하면서 이런 사상을 만들어냈고 그의 주장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우리 머릿속에 스며들어 있다. 막스 베버는 근대적 시각에서 건전한 노동과 소비의 선순환을 통한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배우의 직업윤리는 무엇일까. 예술가나 연예인이 규범을 일탈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물음이다. 예술과 연예는 사실 현존하는 규범을 벗어나는 상상력을 발휘해 전에 없는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보면 수많은 예술가가 규범을 뛰어넘으면서 창조를 이룩했다. 그러므로 예술과 연예의 직업윤리는 막스 베버가 주장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근대 인간의 모습과는 잘 맞지 않는다. 유아인은 한 인터뷰에서 "심판대에 올라가는 직업이지만 심판되기 싫었고,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고 살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규범은 당대 사회의 제약 안에서 작동한다. 제도가 정해놓은 규범을 마음껏 휘저으면서 동시에 사회적 위치를 차지할 수는 없다. 배우가 일탈행위를 했다고 영화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제도·규범은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문제를 대할 때 관습규범과 정서규범을 준거로 삼는다. 대중은 유아인의 일탈행위를 우려한다. 그의 사회적 언행을 겨냥하며 존재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물론 여러 시상식 영상을 밈으로 복제하며 그를 '놀리는' 행위는 또 다른 문화현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는 대중이 향유하는 문화다. 스타는 대중의 관습규범과 정서규범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 대중의 규범은 당연히 제도·규범과 얽혀 있다. '생각하는 배우' 유아인이 건강한 아티스트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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