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성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무역수지는 12개월째 적자다. 중국의 경기회복도 예전만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금리는 지난해보다 3배 상승했는데 미국이 더 올릴 예정이라 여기서 멈추면 다행이다. 부동산의 현재 가치인 전셋값은 하락 중이다.
수출국가 모델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에게 수출은 경제규모를 키울 가장 좋은 수단이다.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동하면 수출량 감소가 불가피하다. 일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이를 대체할 신산업도 마땅치 않다. 소프트웨어산업은 내수시장 지키기에 급급하다. 바이오산업은 이제 실뿌리를 내리는 수준이다.
공무원 인재상을 바꾸고 연봉을 올린다고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 규제개혁도 핵심은 빠졌다. 미국, 일본은 물론 유럽보다 강해 현장의 어려움이 큰 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는 이제 논의조차 안 한다. 전 세계 유일하게 사전규제인 신의료기술평가도 10년째 중장기 논의과제로 남아 있다. 갈라파고스 규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거의 성공에 빠져 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은 안 하려고 한다. 화학물질처럼 위험한 일은 할 필요 없고 새로운 의료기술도 위험하니 쓰지 말자고 한다. 모든 문제를 정부의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자체 수입이 10%에 불과한 전북 김제시는 자체 수입을 대부분 추석 때 지원금으로 뿌렸다. 청년 탈모 치료비를 지원한다며 서울시 의회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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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위기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처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다. IMF 사태가 자금 유동성 위기라면 이번 위기는 구조적이다. IMF 사태는 급성이라 당장 고비만 넘기면 다시 제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다면 이번 위기는 만성이라 근본 원인을 치유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정작 위기의식은 큰 차이가 있다. IMF 사태 때는 집에 있던 금반지를 내놓을 정도로 절박했다.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보다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는 외국 기업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더는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안 한다. 생산시설은 더럽고 위험하다면서 해외 기업 유치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국가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국민과의 위기의식 공유다. 부동산 가격이 이 정도 하락했으면 건설사 몇 곳은 부도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야 정상이다. 불안한 정부가 지원을 늘리자 건설사는 오히려 분양가를 올리고 있다. 작은 문제도 생기면 안 된다는 정부의 위기관리는 오히려 시기를 놓쳐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단초가 된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제도 경쟁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정책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추락은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