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한계치"…尹대통령, 욕먹을 각오하고 결단 내린 이유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박종진 기자 2023.03.06 17:45
글자크기

[the3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차피 해야 하는데 미리 매맞는 게 맞지, 그럼 총선 앞두고 할 건가."

6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간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과 관련해 참모들에게 이같은 취지로 말하며 '속도전'을 주문했다고 한다. 참모들이 정치적 부담을 우려하며 주저하는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날 최종안이 발표됐다는 얘기다.

여기엔 경제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지금이 한일간 '고르디우스의 매듭'(서로 복잡하게 얽혀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가 어려운 문제)을 풀고 가야 할 시점이란 것이다.



대통령실 "'제3자 변제'가 日정부 한계치"
정부가 이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방식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원고에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제3자 변제'를 발표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이것이 "한계치"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6개월간) 일본 당국자와 접촉하며 진전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윤 대통령께 보고드렸다. 처음 세운 목표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는지, 일본이 그런 요청사항을 납득할 준비가 있는지 보고드렸다"며 "오늘 이 시점에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양국 정부가 입장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으로 이미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일본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고, 이미 한일 간 입장 차이로 5년을 허송상황한 상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제3의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대통령실 "죽어도 못한단 日…尹 취임 후 변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사진=뉴시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사진=뉴시스
이 관계자는 "1965년 한일 수교로 기본 조약을 체결하고 한일청구권 협정을 맺었다. 거기 합의 의사록을 보면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지불할 5억불의 보상금을 사용해 우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지원금을 수령하기로 한다는 약속이 적혀있고 53년 동안 지켜져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만 국제법적으로 1965년도 한일간 약속에 비춰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으로선 합의를 한국이 어긴 것이라는 결론"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박정희·노무현 정부 역시 1965년 협정을 받아들여 각기 특별법을 만들어 2차에 걸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진행한 사실을 거론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일본, 피고기업이 참여하는 배상이 이뤄져야 된다는 입장이었고, 일본은 죽어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는 데 있다"며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일본은 태도와 느낌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한국 정부가 어떤 대안을 마련해오면 들어보겠다, 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해 보겠다고 입장을 유연하게 바꿔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발표한 내용은 1965년도 합의에 커다란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이익 극대화 기대…12년만 정상회담 가능성 열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전례도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합의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세상에 알려져 1965년도 청구권 협정에 담을 수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더 자신있게 요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나온 게 2015년 위안부 합의인데 2018년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하고 파기를 했기 때문에 일본 측으로서는 한국과 어렵사리 중요한 합의를 해놨는데 이것이 3년 내에 뒤집힐 수도 있구나라는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발표된 내용도 앞으로 어떤 정부에 의해 어떻게 뒤집힐지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을 계속 설득하고 끌고 갈 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합의로 한일 양국이 국익을 극대화 해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북핵 위협, 동아시아 안보에만 선별적으로 협력해왔다면 오늘 이후부터 양국 국민과 정부가 본격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미래의 청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12년간 끊긴 한일 정상간 회담의 가능성도 열렸다. 이 관계자는 "한일정상회담은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서도 "양국 정상이 서로 오고 가는 것이 중단된지 지금 12년 째 이르고 있다. 이 문제를 양국 정부가 직시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여기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대통령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미래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