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니발', 봉준호의 제자가 만든 '식인의 추억'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3.02.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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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있어."

위험한 수사에 뛰어든 남편이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에게 한번도 털어놓지 않던 속마음을 말한다.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일본 드라마 디즈니+ '간니발' 시즌1 마지막화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간니발'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구게 마을에 새로 부임한 순경 아가와 다이고(야기라 유야)가 고립된 마을에 숨겨진 잔혹하고 충격적인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러물. 드라마 제목은 인간이 인육(人肉)을 상징적 식품 또는 상식(常食)으로 먹는 풍습을 뜻하는 '카니발리즘'과 인구의 50% 이상이 65세 이상으로 공동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마을을 뜻하는 '한계마을(겐카이슈라쿠)'의 합성어다. '사람을 먹는다'를 화두로 집단 이기주의와 폐쇄성에서 비롯된 광기 등을 그로데스크하게 다룬다.

드라마는 구게 마을에 순경 아가와 다이고가 새롭게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펼쳐낸다. 다이고는 정의감이 투철한 경찰이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실어증에 걸린 딸 마시로의 요양을 위해 시골 마을로 향한다. 마을 주민들은 실어증에 걸린 마시로를 위해 스케치북을 선물하고, 선한 웃음과 함께 자신들이 직접 농사 지은 채소와 야채들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러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푸르른 나뭇잎으로 위장한 두껍고 촘촘한 나무 '벽'이다.



'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
다이고가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계기는 전임 순경 가노의 실종이다. 가노가 "너네 사람을 먹잖아"라며 발광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고, 부임 초반 딸 마시로가 사라지는 일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온 딸의 손에 카노의 손가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사람을 먹는다'는 가노의 말과 함께 잇자국이 선명한 손가락. 아가와는 이 마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다이고의 의심은 고토가로 향한다. 마을 유지인 고토 가문 사람들은 구게 마을에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항상 엽총을 지니고 다닐 만큼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나머지 주민들은 다이고 가족들을 살갑게 대했기 때문. 하지만 1~3부, 4~7부로 전개가 반전되고 구게 마을 전체와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의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시종일관 예민하게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짚고 격정적인 갈등을 제공하는데, 마음이 여리다면 보다가 눈살을 자주 찌푸리게 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미덕은 중요 인물들의 탄탄한 서사다. 아버지이자 범죄 사건의 피해 가족이었던 다이고가 구게 마을의 비밀에 집착하고 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장면 곳곳에 촘촘하게 박혀있다. 다이고와 대립각을 이루는 고토가 새 당주 케이스케(가사마쓰 쇼)도 난폭한 성정의 가문 사람들과는 조금 기운이 다른데, 우울이 교묘하게 걸쳐져 있던 눈빛의 까닭도 세련되게 부여된 서사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갈무리된다.

'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간니발', 사진제공=디즈니+

'간니발'은 봉준호 감독의 '도쿄!' '마더'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하고 영화 '실종'의 메가폰을 잡았던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연출을,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각색에 참여한 오에 타카마사가 극본을 맡았다. 다이고를 연기한 야기라 유야는 데뷔작 '아무도 모른다'로 역대 최연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다. '사람을 먹는다'는 거대하고 무서운 진실을 마주하며 흔들리는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고 밀도 높게 형상화하며 몰입감을 높인다.

7회의 짧은 시리즈를 보고 나면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한 회, 한 회가 영화 같은 미장센을 담고 있고,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흥미로울뿐더러, 신사나 마을 축제 등 일본 특유의 풍습이 곁들여져 있어 눈요깃거리가 많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다. 시비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옳다 그르다의 이분법적 시선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보다 세련되게 화두를 던지고, 감각적으로 시선을 분화한다. 디즈니+에서 간만에 건져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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