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물 혐의는 공무원이 직접 돈을 받아야 처벌되는 게 원칙이지만 대법원 판례에서는 가족이 심부름꾼이나 대리인으로 나서 대신 돈을 받은 경우 뇌물죄로 인정한다. 곽 전 의원 재판부는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전달되지도 않았고 아들의 생활비도 곽 전 의원이 부담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경제공동체)가 아닌 만큼 대법원 판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 내내 아들의 퇴직금은 본인과 무관하고 아들이 성인으로 결혼해 독립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아들의 퇴직금 50억원을 자신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곽 전 의원의 논리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재판부는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김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씨의 이런 말을 상당부분 전문진술 또는 허언으로 판단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진 않았다. 전문진술은 진술한 사람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게 아니라 제3자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녹취록 자체는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내용"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녹취록에 등장하는 김씨의 개별 발언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일일이 따져 "(상당수 발언이) 곽 전 의원이 아들에게 말하고 아들이 다시 김 씨에게 말하고 김 씨의 말을 정 회계사가 녹음한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남 변호사에게 "곽씨(곽 전 의원 아들)를 통해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줄 것"이란 말을 여러차례 했다는 데 대해서도 김씨가 말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당시 김씨의 말이 허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재판에서 주장한대로 대장동 민간사업자들 사이에서 공통비 분담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자 공통비를 덜 내려고 곽 전 의원 등에게 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2018년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곽 전 의원이 "돈도 많이 벌었으면 나눠 줘야지"라고 하자 김씨가 "회삿돈을 그냥 어떻게 줍니까"라고 했다는 정 회계사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의 증언도 남 변호사가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기억나는 것처럼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딸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3일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 21-1부 부장판사 마성영·김정곤·장용범)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재판에서 노환중 전 부산의료원장도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전 장관도 재판 과정에서 곽 전 의원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조 전 장관은 성인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딸이 받은 장학금을 자신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3차례에 걸쳐 받은 장학금 600만원을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학생으로 별다른 수입이 없는 딸의 생활비와 등록금 등을 조 전 장관이 부담했던 만큼 독립 생계로 볼 수 없어 딸이 받은 장학금을 조 전 장관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딸에게 지급된 장학금이 직무와 관련된 청탁의 대가라는 점을 조 전 장관이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청탁금지법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곽 전 의원과 조 전 장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정치권에서는 곽 전 의원의 과거 발언도 회자된다. 곽 전 의원은 2019년 10월15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민씨의 장학금 수령과 관련해 전호환 부산대 당시 총장에게 "이건 부모 보고 부모 때문에 돈이 나간 것"이라며 "총장님도 동의하시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