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무죄판단 판결문보니…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3.02.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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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맨오른쪽)이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남욱 변호사(왼쪽 세번째) 변호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맨오른쪽)이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남욱 변호사(왼쪽 세번째) 변호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장동 민간사업자로부터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법원 선고 사흘째인 12일까지도 법조계 안팎에서 "무죄 판결을 누가 납득하겠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에서도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판결 이튿날 수사팀 인력 추가투입을 지시하면서 항소심 준비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의 판결문에 따르면 뇌물 수수 무죄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가지다.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가 받은 화천대유 퇴직금과 성과급 명목의 50억원(실수령 25억원)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하지만 무엇인가 대가로 건넨 돈, 즉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정도 있지만 결혼해 독립생활을 유지하는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뇌물 혐의는 공무원이 직접 돈을 받아야 처벌되는 게 원칙이지만 대법원 판례에서는 가족이 심부름꾼이나 대리인으로 나서 대신 돈을 받은 경우 뇌물죄로 인정한다. 곽 전 의원 재판부는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전달되지도 않았고 아들의 생활비도 곽 전 의원이 부담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경제공동체)가 아닌 만큼 대법원 판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대장동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 계좌로 입금했다는 50억원 중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에 집중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액수의 퇴지금이 지급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 돈과 곽 전 의원의 연결고리를 입증할 뚜렷한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 내내 아들의 퇴직금은 본인과 무관하고 아들이 성인으로 결혼해 독립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아들의 퇴직금 50억원을 자신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곽 전 의원의 논리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재판부는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김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판결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법을 소극적으로 적용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혼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자녀가 많은 현실과 동떨어진 결론이라는 얘기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씨가 곽 전 의원을 보고 돈을 준 것이지 30대 초반인 아들을 보고 줬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자식과 경제공동체가 아니라고 해도 제3자 뇌물 혐의 적용은 고려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곽상도 무죄판단 판결문보니…
재판부가 뇌물 수수로 볼 여지를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판결문에는 "병채 아버지(곽 전 의원)가 아들을 통해 돈을 달라고 한다", "(내가) 병채에게 '(성과급을)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화천대유) 전무보다 많으니까 서너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고 말했다" 등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에게 말한 내용이 인용됐다. 정 회계사가 법정에서 증언하거나 검찰에 제출한 녹음파일,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씨의 이런 말을 상당부분 전문진술 또는 허언으로 판단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진 않았다. 전문진술은 진술한 사람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게 아니라 제3자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녹취록 자체는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내용"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녹취록에 등장하는 김씨의 개별 발언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일일이 따져 "(상당수 발언이) 곽 전 의원이 아들에게 말하고 아들이 다시 김 씨에게 말하고 김 씨의 말을 정 회계사가 녹음한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남 변호사에게 "곽씨(곽 전 의원 아들)를 통해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줄 것"이란 말을 여러차례 했다는 데 대해서도 김씨가 말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당시 김씨의 말이 허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재판에서 주장한대로 대장동 민간사업자들 사이에서 공통비 분담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자 공통비를 덜 내려고 곽 전 의원 등에게 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2018년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곽 전 의원이 "돈도 많이 벌었으면 나눠 줘야지"라고 하자 김씨가 "회삿돈을 그냥 어떻게 줍니까"라고 했다는 정 회계사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의 증언도 남 변호사가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기억나는 것처럼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녀입시 비리 및 유재수 감찰무마 등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자녀입시 비리 및 유재수 감찰무마 등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곽 전 의원 판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조민씨 장학금 수령과 관련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유죄 판결과도 비교되면서 정치권 공방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서상근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50억원 퇴직금이 정당하다는 재판부 판결에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과 상식에 대한 사망 선고"라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곽 전 의원에 대한 특검 추진을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딸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3일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 21-1부 부장판사 마성영·김정곤·장용범)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재판에서 노환중 전 부산의료원장도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전 장관도 재판 과정에서 곽 전 의원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조 전 장관은 성인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딸이 받은 장학금을 자신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3차례에 걸쳐 받은 장학금 600만원을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학생으로 별다른 수입이 없는 딸의 생활비와 등록금 등을 조 전 장관이 부담했던 만큼 독립 생계로 볼 수 없어 딸이 받은 장학금을 조 전 장관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딸에게 지급된 장학금이 직무와 관련된 청탁의 대가라는 점을 조 전 장관이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청탁금지법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곽 전 의원과 조 전 장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정치권에서는 곽 전 의원의 과거 발언도 회자된다. 곽 전 의원은 2019년 10월15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민씨의 장학금 수령과 관련해 전호환 부산대 당시 총장에게 "이건 부모 보고 부모 때문에 돈이 나간 것"이라며 "총장님도 동의하시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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