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배 구조 개선 Ⅱ - 사외이사 독립성은 '회사 걱정'

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2023.01.2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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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미국 델라웨어 주법원은 사외이사 독립성에 대한 흥미로운 판결을 내린다. 법원은 사외이사의 전반적 소득에서 사외이사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독립성 판단의 한 기준이 된다고 봤다.

한 사외이사의 보수는 연 16만4500달러, 총소득의 52.4%였다. 환경운동가이자 라디오쇼 호스트였던 사외이사 자신도 사외이사 보수가 환경 운동을 하면서 가족부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인정했다. 이 내용을 칼럼으로 전한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신세진 일'이 독립성을 저해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또다른 사외이사는 JP모건체이스 임원 출신으로 상당한 자산가여서 보수 자체가 독립성 판단의 변수는 아니었다. 대신 이 사외이사가 평소 오너 경영자를 '찬양 고무' 수준으로 공개 칭송했다는 이유로 독립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김 교수는 "사외이사는 경영자가 유능·정직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자제하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지배구조의 주요축은 이사회다. 이사회는 회사 정책을 결정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최고의사결정 기구다. 그 핵심이 사외이사의 독립성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경영진과 친소관계뿐 아니라 보수 등으로 독립성 개념이 확장되는 흐름이다.

이사회 기능과 사외이사 역할 강화를 20년째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인 우리와 차이가 크다. '대주주의 거수기' '경영진의 형식적 기구' 등 여전히 이사회와 사외이사를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특히 최근 소유 분산 기업(주인없는 회사)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CEO(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 속 재구성된 사외이사들이 과연 독립적일까라는 의문을, 모두가 던진다.


행동주의 펀드는 물론 국민연금, 금융감독원까지 나선 것은 '압박' '압력'이 아니라 정부도 그만큼 이사회 역할을 포함한 지배구조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의미다.

사실 겉만 보면 부족할 게 없다. 사외이사의 요건은 명확하다. 친소, 인연 등을 걸러내기 충분하다. 이사회 밑에 각종 위원회를 둬 책임과 역할을 부여한다. 회장추천위원회, 임원추천위원회 등CEO 등 경영진 선임을 위한 '독립적' 기구도 만들어놨다. 독립성을 위해 그 기구의 구성도 사외이사 중심으로 한다. 외부에도 알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독립적이라고 잘 믿지 않는다.

# 독립성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이 동반돼야 한다. 독립성은 경영권을 가진 자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다.

독립성은 오직 '회사' 가치만을 보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신세진 일'을 떠올리며 판단하는 것은 독립성 훼손이다.
'누구'를 위한 결정이면 안 된다. 경영진 인품이 훌륭하다고 해서 모든 정책이 옳을 수는 없다. 단순히 '누구'를 '견제'하는 것만도 아니다. 경영진과 친소 관계가 없다고 해서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를 위한다고 해서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경영진의 경영 행위가 회사 가치와 동일하면 문제될 게 없다. 반면 경영진의 사익추구 행위가 벌어질 때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이 요구된다.

경영진은 다양한 형태로 사익추구 행위를 벌인다. 연봉과 성과급 등 경영진의 금전적 이익, 건전성을 무시한 무리한 배당 등만 사익추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경영진의 안위를 위해 회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도 사익추구 행위다. 출근 저지 등 노동조합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노동추천이사제'를 수용하는 것, 코로나 19 사태 이후 단축된 은행 영업시간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는 것 등은 노조 눈치보기의 전형이다.

경영진의 이런 행위도 사익추구의 일환인데 이사회는 침묵한다. 노조가 노동자 이익을 대변한다면 이사회는 회사 가치를 고려한 회사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경영진은 노조 눈치를 보고 이사회가 그런 경영진 눈치를 본다면 회사 미래는 없다. 사외이사가 할 일은 자신의 안위 걱정, 경영진과 노조 걱정이 아니다. 오로지 회사 걱정이다.

사외이사 독립성은 지배구조 개선 뿐 아니라 회사의 지속 가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광화문]지배 구조 개선 Ⅱ - 사외이사 독립성은 '회사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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