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서 맞붙은 두 나라, 운명이 갈린 이유

머니투데이 이상배 경제부장 2022.12.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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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샤름 엘 셰이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회의(COP27) 정상회의 중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샤름 엘 셰이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회의(COP27) 정상회의 중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카타르 월드컵' 만큼 대진표가 얄궂은 대회가 있었을까. 이번엔 유독 역사적, 지리적으로 운명적 관계의 국가 간 대결이 많았다.

미국 대 잉글랜드 경기가 미국 독립전쟁, 1812년 미영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면 미국 대 이란 전은 현재진행 중인 핵분쟁과 오버랩된다. 모로코 대 프랑스, 모로코 대 스페인은 옛 식민지와 식민 지배국 간 승부였고, 독일 대 스페인은 옛 합스부르크 왕조 더비(대결)라 부를만 하다.



그 중에서도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영원한 숙적'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경기가 아니었을까. 월드컵에서 승리는 프랑스의 몫이었지만, 과거 전쟁은 꼭 그렇진 않았다.

특히 해전에선 섬나라 영국의 전적이 압도적 우위였다. 대표적인 게 '세계 3대 해전'으로 꼽히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이다. 넬슨 제독이 이끄는 대영제국 해군이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한 전투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과거 프랑스 해군이 영국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경우는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1781년 미국 체서피크만 해전이다. 당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 독립군을 돕던 프랑스는 이 해전의 승리로 사실상 미국 독립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정작 루이16세 등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전쟁 와중에 진 나랏빚 때문에 1789년 대혁명을 맞아 기요틴(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2.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의 편에 선 프랑스의 왕실은 몰락한 반면 전쟁에서 패한 영국 왕실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했으니 말이다.


무엇이 두 왕실의 운명을 갈랐을까.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미국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국가신인도와 그에 따른 국채금리였다.

당시 나랏빚이 많았던 건 영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였다. 1700년 GDP(국내총생산)의 20% 정도였던 영국의 나랏빚은 1820년쯤엔 260%까지 불어났다. 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도 1751년까진 세금의 25%를 국채 원리금을 갚는 데 썼지만, 미국 독립전쟁에 끼어들면서 대혁명 직전인 1788년엔 이 비율이 62%로 뛰었다.

영국이 그 정도의 빚을 지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국가신인도 덕이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의회의 승인 아래 영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상환하며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쌓았다.

반면 절대왕정의 프랑스는 여전히 무소불위의 왕실이 나라곳간 열쇠를 틀어쥐고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에선 세금 징수를 민간 청부업자들이 맡아 비리가 판치고 징세 효율이 형편없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영국의 2배에 달하는 국채 금리를 물어야 했다.

강력한 국가신인도를 바탕으로 낮은 국채 이자를 물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나랏빚을 GDP의 30%까지 낮추는 데 성공한다. 영국이 세계대전 승전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3. 윤석열정부는 2026년까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0%대 중반 이하로 관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건전재정' 기조다.

국가신인도 유지는 현 정부 경제팀의 최우선순위다. 글로벌 격변기를 맞은 중규모 개방경제라는 현실에 비춰볼 때 적확한 인식이다. 아무리 나랏빚이 많아도 일본처럼 국채 금리가 낮거나 국채의 90% 이상을 자국민이 갖고 있으면 걱정이 덜 할텐데, 우린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랏빚을 줄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빚을 줄였기 때문이 아니라 빚을 지렛대 삼아 경제를 빠르게 키운 덕분이었다.

국가채무를 억지로 줄이지 않아도 GDP가 커지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자연스레 낮아진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로 민간 경제를 북돋고,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를 지키는 게 국가신인도 관리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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