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 죽어" 경쟁 말라는데 더 높아진 퇴직연금 금리...왜?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22.11.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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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다 죽어" 경쟁 말라는데 더 높아진 퇴직연금 금리...왜?


금융당국은 연말 퇴직연금 시장의 '머니무브'(자산 이동)를 우려해 금리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 이른바 '커닝 공시'에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금리 경쟁이 잦아들 것이란 기대는 빗나갔다.

'꼼수'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막았지만, '생존'을 위한 인상까지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키고 공포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커닝공시' 규제에도 되살아난 퇴직연금 고금리 경쟁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커닝 공시를 규제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은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지나친 금리경쟁을 하지 말것'을 주문하면서 사실상 동결이거나 전달부터 낮은 수준에서 금리를 제시하는 금융사가 많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금리 인하 폭은 크지 않은 반면 경쟁은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리인상 속도가 둔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이례적인 반응이라는 평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다음달 금리를 이달에 미리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최근 금리 상황만 보면 이달에 제시하는 금리는 전달보다 낮아야 한다"며 "국공채 금리가 최근 한달 사이 약 50bp(베이시스 포인트, bp=0.01%) 빠졌는데 오히려 금리가 올라간 것은 시장 상황이 그만큼 비이성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의 경우 지난달 28일 기준 4.11%에서 이날 오전 기준 3.65%로 46bp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사태 등을 겪으며 비은행권 중소형사의 불안감이 극대화 된 것이 좀처럼 과열 양상이 진정되지 않는 이유라고 분석한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단기 자금시장 경색 사태로 인해 대형 퇴직연금 가입사들 사이에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등으로 부실 우려가 큰 증권사, 저축은행 등의 상품은 빼라'고 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며 "당장 수조원이 빠져나갈 위기에 몰린 비은행권의 중소형 금융사들이 '제 살 깎기' 라는 것을 알면서도 금리 인상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위기에 역마진 우려까지...금융위기 땐 어떻게 했나

퇴직연금 시장의 고금리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금리 기조와 퇴직연금 시장 사업자 간 경쟁으로 퇴직연금 원리금 보장상품의 이율이 7~8%대까지 치솟았다.


당시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약 30~40조원대였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역마진 위험을 무릅쓰고 고금리 경쟁을 벌이자 당국은 강력한 개입에 나섰다. 2010년 퇴직연금 보장금리 자율상한제를 실시해 금리 경쟁에 제동을 걸었다. 시중 금리보다 약간 높은 선에서 업계가 자율적으로 금리 상한을 설정하도록 해 5%대로 금리를 안정시켰다.

이후 중금리와 저금리 장기화 시대를 거치며 1~2%대까지 뚝 떨어졌던 퇴직연금 보장금리는 최근 금리인상과 유동성 우려로 인해 다시 7~8%대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그 사이 퇴직연금 시장은 300조원 규모로 10배 가량 성장했다. 리스크도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2~3% 이율로 운용하던 상품을 7~8%로 '갈아 끼우려는' 중소형사도 나올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금리 차 만큼 고스란히 역마진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리금 보장 상품은 약속한 금리를 보장하지 못할 경우 퇴직연금사업자나 상품판매제공자가 금리 차만큼 책임을 지는 구조다.

이 관계자는 "역마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금융사가 국민의 노후 자금인 퇴직연금을 위험한 곳에 투자한다면 더 큰 문제"라며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커닝 공시 규제나 차입 규제 완화 외에도 금리 상한을 정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 자금이 한꺼번에 이탈하지 못하도록 물량을 규제하는 등의 강력한 추가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금융권의 유동성 공금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퇴직연금 차입규제를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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