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내줄게 계속 사세요"…'영끌' 집주인들 발등에 불 떨어졌다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2022.10.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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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월세 받는 시대(上)

편집자주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올해 가을 전세난이 벌어질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셋값은 떨어지고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전세난이 아니라 역전세난이다.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은 사기꾼으로 몰릴 위기다. 역전세가 불러온 현상과 대안을 짚어본다.

"월세 25만원씩 드릴테니 저희집에 살아주세요" 집주인의 호소
①보증금 반환 대신 이자 내주는 집주인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0일 서울 시내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2022.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0일 서울 시내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2022.10.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종시 소담동에 전용 84㎡ 아파트를 소유한 집주인 A씨는 2년 전 전세보증금 3억3000만원에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해 오는 12월 만기를 앞두고 있다. 재계약을 하려고 보니 전세시세는 1억원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A씨는 결국 기존 임차인과 2억4000만원에 재계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장 9000만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던 A씨는 임차인에게 3000만원은 현금으로 일시반환하고 나머지 6000만원에 대해서는 대출 이자를 지불하기로 했다. 전세대출 금리(5% 예상)를 적용해 한달에 약 25만원 씩이다. 이런 제안에도 재계약을 고민하던 세입자는 A씨로부터 2년 후 이사비용 지원까지 약속받고 역월세에 합의했다.

A씨는 "3개월 전만해도 3000만~4000만원 정도 돌려주면 될 줄 알았던 전셋값이 최근 몇달새 1억원 가까이 급락했고 단기에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임차인에게 역월세 협의를 요청했다"며 "담보가 있는 물건에 대한 다주택자 대출에 규제가 적용되면서 대출을 이용한 전세 퇴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집주인이 되려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는 기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세입자의 전세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전국 전셋값 8개월째 하락‥3년 4개월 만 최대 낙폭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1474만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2월 3억1952만원을 기록한 후 8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가 하락폭은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최근 5개월 간 전국 전세가격지수 변동률은 -0.03%→-0.05%→-0.08%→-0.16%→-0.45%로 확대됐다. 8월 기록한 -0.45%는 2019년 4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몇달 새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하락하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인근으로 신축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서 전세 물량이 급증한 곳들이다. 이런 단지에서는 '역전세'를 넘어 '역월세'까지 발생하고 있다.

역전세는 전셋값이 직전 가격보다 하락해 집주인이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만큼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역월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다달이 월세를 내는 상황을 뜻한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만큼의 목돈이 없는 집주인들이 하는 수 없이 세입자의 전세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기로 제안하는 식이다.

"이자 내줄게 계속 사세요"…'영끌' 집주인들 발등에 불 떨어졌다
대출 '영끌'한 다주택자 궁여지책‥인천·대구 확산될 듯

역월세가 나타나는 이유는 집값 급등기에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투자자들이 급락한 전세금 차액을 돌려줄 여력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신청하는 전세금반환대출(전세퇴거대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돼 안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굳이 이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매달 월세를 받으면서 중개수수료·이사비용 등을 아낄 수 있어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내년 대규모 입주를 앞둔 인천(8만2000가구), 대구(6만3000가구) 등을 포함해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역월세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역월세는 입주가 몰린 지역에서 주로 발생해서다.

실제로 2019년 9510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 입주 당시 서울에서도 역월세가 나타났다. 단지가 위치한 송파구는 물론 인근 강동구, 광진구 전셋값이 일시적 급락했다. 2018년 9·13대책으로 2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이 막힌 탓에 하락한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집주인들이 역월세를 선택했다.

[단독]서울 집주인, 전세갱신하며 세입자에 6000만원 돌려줬다
②전국 역전세 갱신계약 현황 봤더니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사진은 3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적혀 있는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가격표. 2022.10.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사진은 3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적혀 있는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가격표. 2022.10.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주인이 하락한 전세보증금 일부를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역전세'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간 서울에서는 30건이 넘는 역전세 거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보증금 평균액은 6000만원에 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억원을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 거래도 발생했다.

전셋값 5억→3억으로 뚝, 세입자에 2억 돌려준 집주인

16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계약을 갱신한 전세 거래 가운데, 종전 보증금 대비 낮은 가격으로 갱신한 계약은 125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동월 84건 대비 49%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울(32건), 대구(31건), 경기도(27건) 등에서 많았고 세종 8건, 인천 7건, 부산 5건, 전남 3건, 경남 3건, 광주 2건, 대전 2건, 울산 2건, 강원도 1건, 충남 1건, 경북 1건 순이었다.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했다. 서울의 경우, 종전 보증금 평균액은 3억4345만원이었는데 갱신 보증금은 2억8217만원으로 6128만원 낮았다. 집주인들이 갱신계약하면서 평균적으로 6000만원 이상의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줬다는 의미다.

대전은 종전 보증금 평균액 3억8000만원, 갱신 보증금 3억원으로 집주인이 돌려준 보증금 평균액이 8000만원에 달했다. 종전 보증금과 갱신 보증금 차액은 이어 강원도 6500만원, 대구 5193만원, 세종 2643만원 순으로 높았다.

지난 7월에는 대전에서 종전 보증금 5억원 대비 2억원 하락한 3억원에 갱신된 계약도 나왔다. 2년 사이 전셋값이 40% 폭락한 것이다. 같은달 서울의 종전 보증금과 갱신보증금 평균 차액도 8327만원으로 1억원에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이자 내줄게 계속 사세요"…'영끌' 집주인들 발등에 불 떨어졌다
역전세 거래, 보증금 차액도 증가세…수도권·대구 등 심각

종전 보증금 대비 갱신 보증금이 낮은 '역전세' 건수는 최근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월 계약 건수가 70~80건에 머물렀으나 올해 들어 4월 101건과 8월 125건, 두 차례 100건을 넘어섰다. 5월과 7월에도 각각 91건, 94건으로 집계돼 100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보증금 차액 역시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만 해도 작년 8월에는 3457만원이었는데 1년 새 2배 수준(6128만원)이 됐다. 경기 역시 같은 기간 2079만원에서 5782만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점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역전세 계약은 전셋값 급등폭이 컸던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역전세 계약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서울로 320건이었다. 이어 경기도 245건, 대구 119건, 인천 71건, 부산 46건, 전남 33건, 경북 33건, 경남 31건, 세종 17건, 강원도 14건, 충북 14건, 대전 10건 순으로 많았다.

역전세 계약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으나 4월부터 대구 거래건이 급증했다. 대구 역전세 계약은 3월 5건 이후 월 단위로 13건→14건→8건→20건→31건으로 급증했다. 전세보증금 차액 역시 6월 4375만원에서 7월 4706만원, 8월 5193만원으로 급증하는 등 비수도권 지역 중 역전세난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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