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은 최근 방송인 박수홍씨 친형의 횡령 혐의 사건으로 불거진 친족상도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족형 재산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숨은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4월 "공무원인 직계혈족에게 재산을 편취당하고도 친족상도례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처분도 불가능하게 됐다"며 청구된 헌법소원 사건은 아예 판단하지도 않았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의 형을 면제하는 규정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때 입법된 이후 69년 낡은 규정이 재산을 갈취하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나 친척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치지만 지난해 6월 사기·공갈·횡령·배임 등의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해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장애인복지법 제88조의 3, 올해 시행)를 신설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대로 손본 적이 없다.
이 숫자가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고 믿는 전문가는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친족상도례를 이유로 처리하지 않은 사건은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수홍씨 사례가 알려진 데는 유명인이라는 점이 작용했지만 박씨에 못지 않은 경우를 당하고도 속만 태우다 끝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자식을 두둔하느라 피해를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본다. 소송하거나 신고하는 일이 워낙 드물다 보니 가족이 아닌 사람이 아는 것부터 현실적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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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가 인터뷰한 피해 노인들 중에서도 오히려 "내가 줬다"고 가해자를 감싸는 경우가 적잖았다. 지난해 명의도용으로 3000만원의 대출 빚을 지고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70대 김모씨는 어렵게 성사된 전화 인터뷰 도중 "자녀들에게 뺏겼다"는 말에 불쾌감을 표하며 통화를 중단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가족이 재산을 가로챘다는 상담 사례가 접수되더라도 대부분 친족상도례 때문에 고소하지 못한다"며 "피해자는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족에 대한 배신감에 더해 재산 손실과 처벌 불가에 따른 억울함까지 삼중고를 겪는 셈이다.
친족상도례를 두고 잊을만하면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게 이 때문이다. 2012년에 이어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현우 변호사는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로 재량의 여지를 둘 필요가 있다"며 "가족이나 친인척 관계라는 이유로 기소조차 못하고 처벌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현재의 조항은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이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