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술 권하는 국가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2022.09.2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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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국세청이 젊은층(20~39세)의 음주를 장려하기 위해 캠페인(Sake Viak)을 한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사케 뿐 아니라 맥주, 위스키 등의 주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제품과 디자인, 판매방식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사업화할 기회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화두인 시대에 건강과 웰빙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거스르며 정부가 나서 술을 권하는 게 적절한지 비판이 쏟아졌다.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복지지출이 늘면서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국내총생산(GDP)의 256%에 달하는 국가 부채 비율로 인해 세수확보가 절실하다. 그런데 술을 먹지 않아 주세가 덜 걷혔다. 일본의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는 1995년 평균 100ℓ에서 2020년 75ℓ로 줄었다. 2020 회계연도 기준 일본의 주세는 전년보다 1100억엔 이상 급감한 1조1300억엔에 그쳤다. 세수에서 주세 비중은 1980년에 5%였지만 2011년에 3%, 2020년에 1.7%가 됐다.



주류소비가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이후 2030세대에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이른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확산된 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구구조의 변화도 주류소비에 타격을 줬다.일본의 총인구는 2008년 1억 2808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매년 감소해 1억 2480만명대로 내려 앉았다.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9%를 넘어섰다. 젊은세대는 절대인구가 적어 술 소비가 많을 수 없고, 고령화된 노년세대 역시 몸을 생각해 술을 덜 마신다.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것은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탓이다. 주세는 2015년 정점을 찍고 2016년부터 내리막이었다. 1967년 세수를 늘리려고 종량제 방식을 가격에 따른 종가제로 바꾼 뒤 그 해 내국세의 8%를 웃돌았던 주세 비중은 지난해 1%가 채 안 됐다.보건복지부의 'OECD 보건통계 2022'를 보면 순수 알코올 기준으로 측정한 한국의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은 2010년 8.9ℓ에서 2020년 7.9ℓ(일본 6.7ℓ)로 감소했다.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에 8.3ℓ였는데, 이는 이미 술 소비패턴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여기에 팬데믹이 겹치면서 감소세가 심화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강해 질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2020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내 연령별 음주율은 남성 30대와 여성 20대에서 가장 높고 나이가 들면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출생아수가 40만명대던 2002~2016년 사이 인구는 690만명이다. 그 직전 15년간(1987~2001년생)의 997만명보다 307만명이 적다. 주류회사가 가격을 높인 프리미엄 주류제품으로 매출손실을 만회하려고 해도 '수요축소'라는 장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광화문]술 권하는 국가


이는 주류산업의 쇠퇴에서 끝나지 않는다. '홈술', '홈바' 등이 유행하면서 술집과 식당 등 외식산업에서 술 소비가 활성화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그만큼 자영업자들의 매출과 소득이 쪼그라들고 세금을 못 낸다는 뜻이다. 2021년 국내 자영업자 수는 551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0.2%였는데 이들의 몰락이 오히려 가속화될 수 있다. 소비 촉진을 위한 판촉 행위를 법으로 강력 규제하는 마당에 일본과 같이 국가가 술을 권할 수도 없다.

식음료 산업, 나아가 내수산업 전반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산성을 높인들 소비자들이 밥과 술을 2배 더 먹지 않는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건 경쟁업체의 시장점유율을 뺏거나 노년층 상대의 새 사업을 벌이거나 혹은 인수합병(M&A) 등으로 다른 업종에 뛰어들거나 해외시장을 뚫고 수출을 늘리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읽고 미래를 주도하지 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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