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 민족의 감성 기억소(記憶素), 소월의 시어(詩語)

머니투데이 윤병훈 뉴미디어본부 전무 2022.09.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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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구미리내 <진달래꽃>

<진달래꽃> 구자룡·구미리내 엮음, 박물관사랑 펴냄.<진달래꽃> 구자룡·구미리내 엮음, 박물관사랑 펴냄.


오래 우리를 위로해준 소월시의 새 탄생, 소월 탄생 120주년 기념 시집 '진달래 꽂'
기억소(mnemon, 뇌· 신경계 정보의 최소 단위)는 유전자처럼 복제물이긴 하지만 생물에서 생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나 책 등을 통해 전파된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 그에 관한 기억소가 뇌에 복사된다. 그것은 모방을 통해 유전자처럼 뇌에서 뇌로 전달된다. 이야기가 과거를 공유하고 미래를 만들어 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언어 능력을 키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힘들은 기억소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된다. 이처럼 개인의 지식이 공동의 지식이 되면서 문화가 된다. 개인이 이것을 확보하는 데에는 특히 유년 시절의 체험과 학습이 중요하다. 아이 스스로 상상력을 키우고 꿈의 세계를 만드는 데는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힘이 문학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움직이며 살도록 만들어졌듯이, 사람들은 문화라고 하는 특정 종류의 사회적 환경에서 살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문화 속의 문화다. 감성도 그렇다. 우리가 특정한 감성에 대한 개념을 먼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감성을 느낄 수 없다. 감성은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내 것'의 감성이 '우리 것'의 감성이 되게 하는 것은 이야기, 곧 문학이 하는 일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우리의 감성은 현재의 문화이며 그것은 기억소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나누는 말 속에는 감성과 생각이 담기고 감성과 생각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된다.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감성의 원형은 문학을 통해 이어진다.



각 페이지마다 그간 출간된 130권 시집의 표지사진을 수록했다. 구자룡 시인이 50년간 수집한 소장품에서 발췌했다.각 페이지마다 그간 출간된 130권 시집의 표지사진을 수록했다. 구자룡 시인이 50년간 수집한 소장품에서 발췌했다.
1925년 매문사에서 출간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 꽃」, 이 한권의 시집이 지난 97년간 700여권의 이본(異本) 시집으로 출간되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것은 소월의 시어가 이미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감성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가장 작은 감정까지 포용하여 뜨거운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소월의 시에서 나온 형질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월을 초월한 공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을 지닌 소월의 시는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다.

2022년 9월 7일, 소월 탄생(1920년 9월 7일) 120주년을 기념한 시집 「진달래꽃」이 출간되었다. 7년 전인 2016년 소월시집 <진달래꽃> 출간 90주년 기념 <진달래꽃,소월시집을 찾아서>를 펴낸바 있는 구자룡(부천문학도서관장)-구미리내(문학평론가) 시인이 지금까지 출판된 소월의 이본 시집 중 130권을 선정하여 표지와 함께 수록한 매우 이색적인 기념 시집을 엮은 것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자료는 구미리내 시인의 아버지 구자룡 시인이 50년간 수집한 소장품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그동안 출간된 《진달래꽃》, 《못잊어》, 《산유화》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집 표지 이미지를 시와 함께 수록했다. 2부는 소월의시집 중 《김소월 시집》 또는 《세계명작선집》 등으로 잘 알려진 시집의 표지를 이미지로 수록했다. 제3부는 《소월 시 감상》으로 된 표지와 소월을 모티브로 쓴 산문집을 표지로 수록했다. 제4부는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과 소월시가 실렸던 교과서를 수록했다. 특히 스페인어, 베트남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시집의 표지가 눈길을 끈다. 부록으로는 국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소월시를 널리 알리고자 애송시 10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책 말미에 수록된 김소월 시인의 사후(死後)연보는 구미리내 시인이 그동안 소월의 자료정리를 하면서 신문, 잡지, 인터넷, 그리고 각종 서적을 통해 찾아낸 자료를 연도별로 엮은 것으로, 독자들이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실현해 낸 것이다.

오래된 문학작품에 대한 발견과 재발견은 늘 이어져온 일이지만, 「김소월 시인 탄생 120주년 기념 시집」처럼 원본에 부가가치를 더한 재생산품이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소중한 또 하나의 '공유감성' 기억소를 후대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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