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필수의료 기피 원인을 두고 이렇게 하소연했다. 365일·24시간 당직, 고난도 수술,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개원, 의료사고 분쟁 부담 등. 꿈도 희망도 없는 환경에 젊은 의사들은 필수의료를 외면한다. 더는 이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아는 외과 교수님이 교대할 사람이 없어 12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수술했다"며 "전공의 입장에서는 '나도 저기 가면 저렇게 독박 쓰겠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0년 전국 의사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 후 진료 선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는 '자기 개발'(33.3%)이다. 이어 '경제적 이유(31.4%)'가 뒤를 이었다. '업무량으로 인한 피로감'이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비율도 11.2%에 달했다. 이른바 '워라밸'이라 불리는 시간·경제적 여유가 젊은 의사들의 전공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전공을 살려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점도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이다. 흉부외과가 대표적이다. 레지던트 수료 후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는 개원하거나, 월급 받고 일하는 페이닥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심장 수술을 로컬(지역 병원)에서 받으려는 환자가 없기 때문에 흉부외과 전문의는 개원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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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20년 기준 '전문의'를 떼어 버리고 다른 과목을 진료한다는 흉부외과 의사 비율은 20.8%였다. 산부인과도 취득한 전문의 자격과 실제 진료 과목이 다른 불일치율이 15.4%에 달했다.
신정호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내가 아는 흉부외과 선배들을 보면, 탈모 클리닉 하면서 머리 심거나 비만 치료하고 있다"며 "이런 모습을 후배들이 보면 대체 누가 흉부외과에 가겠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사정도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은 "시장 형성이 안 되니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떼어버리고 일반의로 개업한다"며 "어떻게든 성인 환자 진료를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사고 분쟁 부담도 필수의료 과목을 기피하는 원인이다. 필수의료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나 고난도 수술이 많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곧바로 의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와 관련한 의료진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소송 부담감은 여전히 크다.
신 교수는 "이대목동병원 사고 이후 신생아를 전공하겠다는 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일을 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피부가 안 좋아졌다고 피부 미용 의사가 감옥 가지는 않지 않느냐. 젊은 의사 입장에서는 굳이 신생아 전공을 왜 해야 하는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부인과에는 과실이 없는 분만 사고에 의료인이 피해 보상액 일부를 부담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있다. 산모나 신생아가 분만 과정에서 사망하면 최대 3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의료진 잘못이 없어도 피해 보상 재정의 30%를 산부인과 의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과실 사고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위축되고 지원자 수도 줄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용배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필수의료 기피의 해법은 너무나 자명하다"며 "필수의료 분과 종사자가 동기 부여될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고강도 근무 여건을 순화하면서, 선의의 진료 행위에 그 결과로 심판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