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과 오면 당직 하루 빼줄게"…간호사 죽음이 드러낸 의료계 민낯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2022.08.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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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과 오면 당직 하루 빼줄게"…간호사 죽음이 드러낸 의료계 민낯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주막하출혈(뇌출혈)이 발생한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필수의료 전문의'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수가 개선과 수련 비용 국가 부담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필수의료는 환자 생명이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는 의료 서비스다.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비뇨의학과·외과·산부인과·내과가 이에 속한다. 이번에 사망한 간호사는 뇌출혈 소견을 보였고 뇌출혈 수술을 담당하는 곳은 신경'외과'다



11일 대한뇌혈관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85개 전공의 수련 병원에서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숙련된 의사 수는 133명이다. 하나의 수련 병원에서 최소 2명의 숙련된 개두술 의사가 필요하므로 170명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김용배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는 10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숙련된 의사가 병원당 2명이 채 안 되는 현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다른 필수의료 과목 사정도 비슷하다.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목 정원 충원율은 2018년부터 꾸준히 미달을 기록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흉부외과는 48명 전공의 정원에서 23명밖에 확보하지 못해 47.9%의 충원율을 보였다. 소아청소년과는 203명 정원에서 57명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충원율이 28.1%에 불과하다. 산부인과는 지난 2020년 88.7%였던 충원율이 올해 80.4%로 떨어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지원율이 확 빠졌다"며 "근무가 힘들기로 유명한 과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당직을 하루 빼준다는 둥 유인책으로 어떻게든 지원자를 붙잡으려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우리과 오면 당직 하루 빼줄게"…간호사 죽음이 드러낸 의료계 민낯
의료계는 특정 진료과 기피 현상 원인으로 △열악한 근무 현황 △고난도 수련 과정 △낮은 의료비 △어두운 장래성 △의료 사고 분쟁 부담감 등을 지적한다.


특히 수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충수절제술(맹장수술)과 제왕절개분만 수술 수가는 미국의 10분의 1이다.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받아야 했던 '클립핑' 수술의 경우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에서는 370만원, 일반 병원에서는 약 300만원을 받는다. 미국은 보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수천만 원에서 1억원을 넘게 줘야 하는 수술이다.

김용배 이사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가 개두술을 제일 많이 하는데 지난 1년간 수술했더니 비용이 4% 손실이 났다. 인건비·재료비 포함하니 원가의 104%를 사용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재현 병원의사협회 부회장은 "뇌혈관내과 수술 자체가 고난도에 힘들고 전문성을 갖추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위험한 수술을 함에도 수익이 안 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의사를 고용하는 등 투자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의사 정원 확대는 해답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호과에 몰리고 기피과에 지원하지 않는 편중이 문제라는 것이다. 수련 과정이 어려운 필수의료 과목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근 신 의원이 발의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 개정안도 이런 취지를 담고 있다.

정 부회장은 "힘들고 돈이 안 되는 3D 업종에 사람이 안 몰리는 건 똑같다.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기피과 지원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라며 "의사가 소명 의식을 갖고 필수의료 분야에 선뜻 지원할 수 있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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