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에 올라탄 잠룡들[광화문]

머니투데이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2022.08.0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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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티저 포스터 (C) 뉴스1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티저 포스터 (C) 뉴스1


"대통령에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봤냐고 물었더니 드라마는 안 봤는데 메시지는 보고 받았다고 했다. 노른자, 흰자, 계란 껍질 얘기 나오는 현실에서 출퇴근에 쓰는 시간을 돌려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가 올 상반기 최대 화제작인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윤 대통령과 교감을 나누고 싶었던 주인공의 넋두리는 이렇다.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몰라.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하고 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 갖고..."

'나의 해방일지'는 "날 추앙해요"라는 명대사와 1000만 영화 '범죄도시2'의 빌런인 배우 '손석구'를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만든 극중 '구씨' 캐릭터 외에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삼남매의 애환을 다루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국토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교통카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표한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출근하는 시간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평균 1시간 27분이 걸렸다. 경기에서 서울은 1시간 24분, 인천에서 서울은 1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서울시가 자체 행정 빅데이터와 KT (35,600원 ▲1,100 +3.19%)의 휴대전화 LTE+5G 시그널 데이터, 한국교통연구원의 기종점 통행량 데이터를 융합해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경기에서 서울로 출근할 땐 평균 72.1분, 인천에서 서울로는 82.1분이 각각 걸렸다.

여기에 집이나 직장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출퇴근길에 대부분이 3~4시간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오죽하면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대중교통에서 보낸다"는 말까지 회자될까. 원 장관이 취임날부터 "남매가 택시를 같이 잡아 타려고 밤에 온갖 해프닝이 일어나는 드라마에 너무나 공감이 가면서도 슬펐다"며 "(서울) 사당역·양재역에 가보면 2시간씩 빨간 버스를 타고 들어와 출퇴근 시간을 바쳐야 하는 부분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한 이유다.

'나의 해방일지'를 감명깊게 본 정치인은 원 장관만 있는게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드라마를 화두로 꺼냈다.


오 시장은 최근 취임 이후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첫 인터뷰 자리에서 "눈물이 났다"고 운을 뗀 뒤 "'저녁이 없다'는 대사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면서 "택시 타고 귀가하는 걸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경기도와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며 경제활동을 하는 200만명도 서울시민"이라며 "서울 살다 주거문제로 밀려나간 30~40대 젊은 세대들의 현실을 드라마가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 지사도 '6.1 지방선거' 때부터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노라면 경기도에 사는 것이 무슨 죄인인 듯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막차 걱정 때문에 회사 동호회 활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회식 자리에서도 눈치를 보며 일어나고, 날 밝을 때 퇴근해 어두컴컴한 밤에 귀가하는 삶의 반복은 상실감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잠룡들이 '나의 해방일지'를 매개로 수도권 현안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제부턴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할 때다"(원희룡), "출·퇴근 시간을 30분씩 줄여 '1시간의 여유'를 돌려드리겠다"(김동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등 교통문제 해결에 책임감을 느꼈다"(오세훈) 등 앞다퉈 내놓은 이런 진심들이 '헛된 약속(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나의 해방일지'에 올라탄 잠룡들[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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