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섭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정동섭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가 만성 심방세동 환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정 교수는 하이브리드 술식을 통한 부정맥 치료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의료인이다.
가슴을 째지 않는 최소침습적 방법으로 수술이 이뤄진다. 조그만 구멍 안에 '흉강경'을 넣어 직접 심장을 보면서 심방세동의 원인을 차단한다. 수술 후 1년간 정상 박동 유지율은 90% 이상, 5년 이상 유지율도 80%를 넘는다. 현존하는 부정맥 수술 중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직접 유럽을 찾아가 수술을 배운 정 교수는 지난 2012년 하이브리드 술식을 국내에 도입했다. 올해 8월까지 700례가 넘는 수술을 치렀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사람에게 수술하기 전에 돼지 일곱 마리로 연습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돼지 심장이 사람과 가장 비슷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있다"며 "수술을 연습하려고 돼지 7마리를 샀다. 한 마리당 100만원이 넘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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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마리 중 세 마리가 죽으면서 연습이 끝났다고 한다. 다행히 첫 사람 대상 수술은 성공했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이 수술을 사람에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면서도 "유럽에서 하고 있는데 '나라고 못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원체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하이브리드 술식은 도입 이후 계속 진화해왔다. 도입 초기 3~4시간 걸리던 수술 시간은 이제 1시간 10분으로 줄었다. 이제는 좌심방이(좌심방에서 귀처럼 튀어나온 부분)를 클립으로 조여 효율적으로 뇌졸중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수술 비용도 점차 줄었다. 정 교수는 "350만원이었던 클립이 올해 8월부터 필수 급여로 들어와 환자는 5%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700례를 거치면서 여러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안겼다. 비아그라만 먹으면 심방세동이 심해지는 70대 노인을 치료해 성생활을 다시 가능케 했다. 직장 스트레스로 심장 기능이 떨어져 수술받았던 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시인이 됐다고 한다.
그는 "이 분야에서 제가 1등을 하는 것은 제가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며 "심방세동 하이브리드 술식에 관해서는 '나에게 무조건 받으라'고 주저 없이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동섭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심방세동은 왜 위험한가?
▶삶의 질 저하가 크다. 심장이 빨리 뛰니까 환자는 발표 등 긴장되는 일을 아예 못한다. 환자의 60%는 항응고제 등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 뇌졸중 위험도 커진다. 뇌졸중 환자의 30%가 심방세동을 갖고 있다. 게다가 심방세동으로 심부전증이 생기고 심하면 심장 이식까지 갈 수 있다. 조기 사망하거나 급사하는 경우도 있다. 심방세동에 걸리면 사망 위험이 3.5배까지 높아진다.
-심방세동 단계별로 치료는 어떻게 되나?
▶발작성 심방세동은 1주일 동안 정상 박동으로 안 돌아가는 경우다. 약을 먹거나 간단한 내과 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 1주일 넘도록 정상 박동으로 안 돌아가면 지속성 심방세동이다. 약물로 증상을 조절하지만 대부분 직접 심장의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를 없애 치료한다. 1년이 넘어가면 만성 지속성이라고 하는데 흉강경 부정맥 수술로 치료하는 걸 추천한다.
-하이브리드 술식의 효과는 어떠한가?
▶수술이 성공하면 1년간 정상 박동 유지율은 90% 이상, 5년 이상 유지율도 80%를 넘는다. 현존하는 수술 중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이다. 좌심방이를 클립으로 막아 뇌졸중도 예방할 수 있다. 지금까지 700명 환자를 수술했다. 수술한 지 8~10년 된 환자들이 있는데 수술 이후 약을 한 번도 안 드신 분이 많다. 수술 도입 전에는 만성 지속성으로 진단받아 평생 약을 드셔야 했던 환자들이다.
-어떻게 이 술식을 도입하려고 마음을 먹었나?
▶부정맥 수술을 할 때 가슴을 째고 하면 효과는 좋지만 위험하다. 특히 부정맥만 있는 환자에게 개흉 수술을 하는 건 (의료계의) 컨센선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내과 시술이 있지만 재발하면 평생 약 3~4개씩 먹고 부작용과 싸워야 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우리 외과에서도 최소침습적으로 할 수 있는 수술이 없을까 고민했고, 내과와의 협력이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는 수술을 찾다가 유럽까지 가서 배워오게 됐다.
-도입 당시의 일화가 유명한데 들려달라
▶돼지 심장이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 돼지 일곱 마리를 갖고 수술 연습을 했다. 첫 번째가 실패하고 나서 '이 수술이 정말 가능한가' 하며 좌절했다. 두 번째 돼지도 심장이 터져서 피가 나서 죽었다. 세 번째 돼지는 성공했지만 여섯 번째에서 또 실패했다. 처음에는 이 수술을 사람에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유럽도 하고 있는데 나라고 못 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엄청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몰려왔지만 내 스타일이 중간에 포기 안 하는 것이다. '그냥 해보자'는 식으로 끝까지 들이밀었다.
-심실세동에도 하이브리드 술식을 적용할 수 있나?
▶심실세동 적용에는 많이 상황이 진척됐다. 심실세동 수술은 미국의 최고 잘하는 센터에서도 성공률이 60~70%에 불과하다. 심실세동은 발생하는 즉시 바로 심정지가 나타나는 매우 위험한 질환이다. 수술 시 여러 세팅이 필요한데 돼지 세 마리를 이용해서 시뮬레이션을 한 번 했다. 수술의 가능성이나 테스트는 박경민 순환기내과 교수님과 같이했다. 내과와 협력이 필요한 수술이다. 돼지로 가능성은 확인했으니 이제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만 남았다.
-수술하면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70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비아그라만 먹으면 심방세동이 심해져서 성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수술 이후 비아그라도 마음대로 드시고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해지셨다. 이후 따님이 '엄마가 살아 계시는데 아버지가 자꾸 바람 핀다'고 말씀하시더라.
또 한 명의 환자는 30살 기자였다. 다른 곳에서 수술하다 심장이 터져서 온 환자였다. 심장 기능이 40%로 떨어져서 수술을 해 정상으로 만들었다. 이후 그 환자는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겼다며 기자를 그만두고 시인이 됐다. 내게 수술을 받고 나서 인생이 바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이브리드 술식이 내게 메인은 아니다. 중국집으로 하면 '짜사이' 정도 음식이다. 하지만 주변에 가족이나 지인에게 '이 수술은 무조건 나한테 받으라'고 주저 없이 얘기할 수 있다. 심방세동 환자들이 이 수술을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치료를 그만둔 환자는 빙산의 일각이고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항응고제 와파린은 뇌졸중을 유발하지만 1년에 1~1.2% 정도 뇌출혈 위험을 증폭시킨다. 10년이면 12%다. 적극적인 수술로 이런 약물 복용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치료를 멈추치 말아달라. 건강 수명을 최소 5~7년 늘릴 수 있으니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