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공짜로 구할 수 없다 [우보세]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2022.07.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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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광양항 소속 유창청소업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광양항 관리부두에서 선박에서 내린 생활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기자광양항 소속 유창청소업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광양항 관리부두에서 선박에서 내린 생활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기자


"결국은 인건비죠."

지난달 27일 광양항 관리부두에서 만난 유창청소업체 관계자에게 해양플라스틱 업사이클 현장의 애로사항을 묻자 한치 망설임 없이 '돈'을 지목했다. 이날은 원료부두에 철광석을 공급한 20만톤급 화물선 'SM라이언호'에서 내린 생활 폐기물의 분리 수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배에서 내린 톤백(물 1톤을 담을 수 있는 대형포대)을 열으니 화장지와 비닐, 깡통 등 구분없이 섞인 생활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는 작업자조차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한달 가량 항해에서 묵힌 악취가 마스크를 넘어 들어왔다.

배에서 내린 선박폐기물을 처리하는 유창청소업체가 톤백 하나당 선사에게서 받는 처리비용은 15만원이다. 업체들은 해양플라스틱 자원순환 사업 이전에는 폐기물 가운데 값어치가 있는 전자제품, 고철 따위만 간단히 추린 후 소각 혹은 매립했다고 한다. 소각·매립 비용을 쓰고 남은 돈과 재활용품을 매각한 돈이 유창청소업체의 몫이다. 지금은 배에서 내린 생활쓰레기를 뒤져 의류 재생원료로 쓸 수 있는 깨끗한 폐페트(PET)병을 따로 수거한다.



해양플라스틱 자원순환 사업을 진행하는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는 분류를 끝낸 페트병에 대해 톤백 1개당 4만원씩 청소업체에 별도로 비용을 지불한다. 들어오는 폐기물마다 다르지만 폐페트병으로 톤백 하나를 채우려면 폐기물 톤백 20개를 분리수거해야 한다. 작업자 2명을 투입한다고 가정할 때 4시간가량 걸리는 일이다.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9160원을 적용해도 7만3280원어치 노동이다. 분류한 폐페트병 만큼 일반 폐기물 처리비용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해양 환경을 위한다'는 '선의'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사업이란 얘기다.

그나마도 국내에서 수거한 폐페트로 만든 재생원료의 품질은 중국산에 비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싼 맛에 중국산을 쓴다'는 말은 이 업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새 페트 원료를 섞어 순도를 높이는 것 같다'는 의심이 나오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폐페트 재생원료로 의류용 원사(原絲)를 뽑는 업계 관계자는 "조금 더 비용을 들이더라도 국산 재생원료를 쓰고 싶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탓에 중국산을 쓰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게 국내 업계가 직면한 최대 과제다. 플라스틱을 자동으로 걸러줄 수 있는 광학선별기 도입을 통한 재활용 분리수거장 현대화 또는 분리 인력 확대 투입이 절실하지만 주로 지역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재활용 업계의 특성상 현대화 및 인력충원에 들어가는 자본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톤백 당 4만원. YGPA가 책정한 플라스틱 재활용 비용은 한창 성장 중인 우리나라 순환경제에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용을 시장 참여자의 '선의'에 기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금액이다. 지구를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건 공짜 또는 헐값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순환경제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선 재활용 자원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정부 차원의 비용 책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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