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를 위한 큰 가이드라인[광화문]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22.07.1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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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12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별관에서 '정부 인력운영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7.12/뉴스1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12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별관에서 '정부 인력운영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7.12/뉴스1


효율화와 가이드라인. 목표달성을 쉽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하려면 기준(가이드라인)을 정해두는게 좋다. 하지만 획일적인 기준은 부작용을 낳는다. 촘촘한 가이드라인 때문에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작은 정부라는 목표를 위해 향후 5년간 '공무원 인력 동결'을 추진하고 대신 부처별로 매년 정원을 1%씩 감축해 '통합정원'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복지 수요와 감염병 대응 등 실무를 맡았던 지방공무원 역시 앞으로 5년간 지방자치단체별로 매년 정원의 1%씩 5년 동안 총 5%를 재배치한다는 계획도 있다.



조직 효율화를 꾀하고 국정과제와 현안 업무에 공무원들을 집중 배치하겠다는 것이지만 1%, 5% 등 딱딱한 숫자가 앞서면서 벌써부터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부처별(또는 지자체별) 평가에 부합하려면 감축 기조에 무리하게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보건소·사회복지·소방인력 등을 중심으로는 서비스의 질과 해당 업무 담당자들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초과근무와 과로, 트라우마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으로 반년 넘게 월 100시간 이상(특정월에는 110시간) 초과근무를 하고 극단적인 선택 하루 전까지 민원인들의 욕설에 시달렸던 인천 지자체의 복지 담당 30대 공무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효율화를 명분으로 정부의 또다른 국정과제와의 연동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반기에 실시하는 조직진단 결과에 따라 매년 1%의 인력을 자체 조정·재배치해 다른 필수 증원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경찰과 해양경찰은 정치적 외풍을 많이 탄다. 경찰국 신설과 전 정권 하에서의 여러 사건이 얽혀진게 대표적이다. 정원동결과 인원감축 등이 맞물려 공무원 신규 채용이 줄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왔던 공시생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다.

가이드라인 일괄 적용을 통한 효율화를 강하게 주장한 윤석열 정부가 다른 문제에서 가이드라인과 법규정이 경직적이라며 비판한 사례도 있다. 정부는 최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쓰이는 교육교부금(교육예산)의 일부를 대학에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던 1972년 교육예산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도입한 교육교부금 제도(내국세의 20.79%를 떼어 조성하는 예산과 교육세로 구성)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현실과 괴리가 뚜렷해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지원으로 쓰일 예정인 일부 교육교부금의 용도에 대한 가이드라인 조짐이 있는 것은 논란거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인력 양성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총리와 교육부 등이 앞다퉈 방안을 마련한 것이니만큼 용도가 바뀔 교부금의 상당액이 '반도체' 딱지가 붙어있는 사업에 우선 투입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반도체 인재 양성이 시급하지만 교수 확보, 반도체 사이클 예측을 해야하는 기업의 수요, 석.박사급 인력 양성과의 균형 등 따져야 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신3고(고환율, 고물가(고유가), 고금리)와 코로나19 재확산,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욕은 평가해줄만 하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부숴버리기 이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눕는 사람은 신장과 체구에 관계없이 늘 침대 크기에 꼭 맞았다. 신장과 체구에 따라 몸을 늘리거나 신체 일부를 훼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선택과 집중, 효율화, 작은 정부 등은 현 정부의 국정 청사진인데다 가치를 인정받는 목표다. 하지만 목표달성을 위한 기초 조사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경직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운영돼 인력부족과 행정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면 어쩔수 없이 눕거나 눕혀질 이들은 무자비한 침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배성민 경제에디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배성민 경제에디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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