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쯤 서울 은평구의 인도 끄트머리에 러브버그들이 죽어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주택가도 매일 러브버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1cm도 안되는 작은 벌레들이 60대 은평구 주민 한상주씨(가명)가 사는 3층 빌라까지 잘도 날아왔다. 한씨는 "매일 모기약으로 러그버그를 최소 10마리씩 잡고 있다"며 "봐도 봐도 징그러운 것은 적응이 안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장 상인들 피해가 컸다. 팔려고 내놓은 꽃, 과일, 생선 위에 러브버그가 앉았다. 요식업하는 상인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벌레 앉은 음식 아닐까'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22년째 두부를 포장해 판 40대 상인 B씨는 "커튼 친 채 두부를 만들었고, 즉시 포장했는데도 손님들이 '여기 벌레 들어갔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꽃집 상인 오행순씨(74)는 이날 아침 빗자루로 쓸지 못한 가로수 아래 러브버그 사체들을 보여줬다. 적어도 200마리는 돼 보였다. /사진=김성진 기자
사람에게 달려드는 특징도 있다. 파리와 모기는 손을 휘두르면 물러나지만 러브버그는 아랑곳 않는다. 전날(4일) 은평구에서 본 러브버그들도 민소매 입은 주민들의 팔, 허벅지에 수시로 앉았다.
러브버그가 올해 처음 출몰한 것은 아니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매년은 아니지만 러브버그가 때때로 출몰했다"며 "재작년에도 나타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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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출몰은 처음이다. 은평구에 30여년 살았다는 60대 주민 C씨는 "이렇게 시커먼 벌레가 득시글 댄 것은 처음"이라며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왔더니 현관, 주차장이 난리도 아니더라. 빨리 좀 퇴치하면 좋겠다"고 했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면에는 '이상 기후'가 있다. 러브버그는 매년 봄, 여름에 산란한다. 유충은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습한 기운을 좋아해서 이듬해 봄과 여름 비 오는 날에 성충으로 유화한다.
이동규 고신대학교 위생곤충학과 교수는 지난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난 겨울이 비교적 따뜻하고 습해서 번데기들이 생존할 확률이 높았다"며 "올해도 가뭄이 길어서 (최근 장마 때) 번데기들이 한번에 집단 성충이 됐다"고 했다.
은평구청 관계자들이 4일 오후 2시쯤 러브버그 근원지로 꼽히는 앵봉산 일대를 방역하고 있다./사진제공=은평구청.
이 교수는 집에서도 쉽게 '러브버그 퇴치제'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강청결제에 오렌지와 레몬즙 세 스푼을 섞어 방충망에 뿌리면 러브버그가 잘 붙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긴급 방역 중이다. 은평구는 이날 러브버그 근원지로 꼽히는 앵봉산, 봉산, 이말산 일대에 살충제를 뿌리는 등 집중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