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출 시장의 조삼모사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2022.06.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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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금 상환액이 부담스러우면 처음엔 이자부터 갚자', '상환기간을 늘려 매월 갚는 원리금을 낮추자'.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큰 틀의 규제를 둔 채 대출 한도를 늘리려다 보니 은행과 금융당국 할 것 없이 조삼모사(朝三暮四)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조삼모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규제를 피해 대출금을 늘릴 순 있지만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불어난 이자 청구서를 받는 사람은 금융소비자다.



은행과 정책금융이 내놓은 만기연장을 보면 매달 갚는 원리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보다는 '원리금을 줄였으니 그만큼 대출을 더 할 수 있다'에 초점이 맞춰진다.

월 3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DSR 40%를 적용받으면 40년 만기, 연 4.6% 고정금리를 기준으로 약 2억6000만원의 대출이 가능하다. 만기를 50년으로 늘리면 2억8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당장 2000만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만기연장 효과가 크지만 자칫 필요하지 않은 사람까지 순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크다. 한도가 2000만원 증가하는 대신 갚아야할 이자는 1억2700만원가량 는다. 만기가 길어지면 금리가 오르는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갚아야하는 이자는 더 많을 것이다.

초기에 이자를 중심으로 적게 갚고, 점차 상환금을 늘려나가는 체증식도 비슷하다. 정부는 기존 30년만기 보금자리론까지 적용됐던 체증식을 40년 만기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체증식을 활용하면 최초 10년 원리금 상환부담을 줄고, 최대 대출 가능 금액은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뒤에 덫이 있다. 체증식은 최초 10년 원금 상환율이 원리금 균등상환식보다 떨어진다. 이자만 주로 갚아서다. 또 원금을 갚는 속도가 느리다보니 같은 금액을 빌려도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더 크다. 중도 상환, 자산 가치의 변화 등으로 체증식이 당장 이익일 수 있으나 반대일 수도 있다.


어떤 대출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소비자의 몫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하진 않는다. 우리는 숱한 조삼모사에 속는다. 지금의 정책변화가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원금을 함께 갚아 나간다'는 대출 규제의 목표에 맞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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